2026.04.17

서울시가 돌봄 조부모에 月30만 원 드려요

입력 2026-04-17 10:47

‘황혼육아’ 제도화… 공적 인정과 책임 전가 사이

(챗GPT 생성 이미지)
(챗GPT 생성 이미지)

가족의 도움인가, 사회적 노동인가?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에게 지급되는 ‘손주돌봄 수당’이 확대된다. 서울시는 16일 ‘서울아이 동행 UP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기존 영아 중심이던 지원 대상을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단계적으로 넓히고 소득 기준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이 제도는 24개월에서 36개월 사이 영아를 돌보는 조부모에게 월 30만 원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서울시는 이를 초등학교 1~2학년까지 확대하고, 지원 기준도 중위소득 150% 이하에서 180% 이하로 완화할 계획이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지원 확대처럼 보이지만, 이번 정책은 ‘황혼육아’를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 변화를 드러낸다. 손주 돌봄을 더 이상 가족 내부의 자발적 도움이 아니라, 일정 부분 공적으로 인정해야 할 ‘노동’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한국에서 조부모의 돌봄 역할은 이미 구조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맞벌이 가구가 늘고 초등학교 입학 이후 돌봄 공백이 커지면서, 하교 이후 시간을 책임지는 주체가 조부모인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 노동이 그동안 ‘당연한 가족 역할’로만 간주되며 경제적 보상이나 제도적 보호에서 배제돼 왔다는 점이다.

이번 정책은 이 지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서울시는 “바쁜 부모를 대신해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를 지원 대상으로 명시하며, 이미 일상화된 돌봄 구조를 정책으로 끌어들였다.

특히 주목되는 변화는 대상 연령의 확대다. 기존 영아 중심 지원에서 초등 저학년까지 포함되면서 정책의 초점도 바뀌고 있다. 이는 출산 장려를 넘어, 맞벌이 가구의 실제 돌봄 공백을 메우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도자료에서도 아이돌봄 부담으로 인한 퇴사를 막겠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결과적으로 이 정책은 세 가지 변화를 동시에 시사한다. 시니어는 더 이상 보호 대상이 아니라 돌봄을 제공하는 주체로 자리 잡고 있으며, 가족 내부에서 해결되던 돌봄이 공공 정책의 영역으로 편입되고 있다. 동시에 이는 여성의 경력 단절을 막기 위한 노동 정책의 성격도 함께 갖는다.

(서울시)
(서울시)

황혼육아 보상 기준 논의 필요

다만 논의는 이제 시작이다. ‘공적 인정’과 ‘적정 보상’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존재한다. 월 30만 원이라는 금액이 조부모가 감당하는 돌봄의 시간과 강도를 충분히 반영하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가족이니까 무상이어야 한다’와 ‘노동이니까 시장 임금 수준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이분법을 넘는 기준이다. 적정성은 감정이 아니라 돌봄의 시간과 강도, 그리고 조부모가 대신 떠안고 있는 사회적 비용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하루 몇 시간, 주 몇 회 돌보는지, 등하원 동행과 식사 제공까지 포함되는지, 아이 연령이 어떤지에 따라 돌봄의 부담은 크게 달라진다. 또한 조부모 돌봄이 없을 경우 부모가 지불해야 할 민간 돌봄 비용이나 경력 단절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이 노동은 단순한 가족 도움을 넘어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해외 사례도 이러한 기준을 뒷받침한다. 영국과 호주는 조부모가 사실상 양육을 맡는 경우에 한해 공적 지원을 제공하고, 싱가포르는 세제 혜택을 통해 간접적으로 인정한다. 북유럽 국가들은 공공보육을 중심으로 돌봄 부담을 분산시키는 구조를 갖고 있다. 즉 조부모 돌봄 지원은 대부분 ‘전면 보상’이 아니라, 상황과 역할에 따라 제한적으로 설계된다.

이 흐름에서 보면 서울시의 월 30만 원은 ‘충분한 임금’이라기보다 ‘공적 인정의 출발점’에 가깝다. 실제 돌봄 강도를 고려한 차등 보상이나, 장시간 돌봄에 대한 추가 지원 등은 향후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더 중요한 과제는 이 제도가 공공돌봄을 대체하는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조부모가 돌보지 않아도 부모가 안심할 수 있는 공공돌봄 체계가 함께 구축되지 않는다면, 지원금은 오히려 가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

서울시는 ‘서울아이 동행 UP 프로젝트’를 통해 초등 돌봄 인프라와 틈새 돌봄을 전면 확대한다고 밝혔다. 지역아동센터와 키움센터, 서울형 키즈카페를 2030년까지 총 1258개소로 늘리고, 방학 중 점심을 제공하는 ‘방학 점심캠프’를 새로 운영한다. 아침·야간·주말·긴급 돌봄도 대폭 확대해 돌봄 공백을 줄인다. 지역아동센터에는 교육복지 플랫폼 ‘서울런’ 지원을 넓히고, 경계선지능 아동과 ADHD 조기 발견 및 맞춤 돌봄 체계도 강화한다. 급식 단가는 1만 원으로 올리고, 건강식단과 신체활동, 디지털 디톡스 프로그램까지 포함해 돌봄의 질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결국 핵심은 균형이다. 조부모가 원해서 돌보는 경우에는 일정 수준의 공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동시에 조부모가 돌보지 않아도 되는 선택지도 보장돼야 한다.

‘황혼육아’는 더 이상 개인의 선택이나 미담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이미 사회를 유지하는 중요한 돌봄 축이 된 만큼, 그에 걸맞은 기준과 합의가 필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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