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공감] 삶꾼 무애(無碍)의 이야기

기사입력 2015-01-16 15:51 기사수정 2015-01-16 15:51

연재를 시작하며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창간을 축하하며 글 쓸 기회를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제 삶에 큰 자리를 차지하는 영화, 음악, 등산, 여행, 운동 및 수련 등과, 직업과 직결된 서울의 교통, 교육 등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에피소드들을 곁들여 펼쳐볼까 합니다.

그러나 잡지나 신문 등에 글을 써 본 적이 별로 없어 서투른 점도 많으리라 생각되니 여러분의 격의 없는 지도편달을 바랍니다.

글 임성빈 명대 명예 교수

▲<리자의 연인> 포스터

내가 만난 영화, 그 첫 번째 이야기

2012년도 다 저물어가던 10월 하순의 어느 날, 필자가 수천 개의 영화 DVD를 가지고 있는지 잘 알면서도 한 번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던, 필자를 잘 따르는 후배 C씨가 “혹시 <리자의 연인>이라는 영화 가지고 계세요?”라고 물어왔다. 그 영화는 본 적은 없지만 주제가는 기억이 나서 집에 와 확인해 보니 역시 영화는 없었다. 그러나 그 당시 유행했던 영화음악을 모아놓은 LP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영화여서 친근감을 가지고 있던 영화였다.

이런 경우 필자는 일반적으로 그냥 없다고 해버리지 않고 최선을 다 해서 그 영화를 구해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서 검색해 보니 이 영화가 국내에서는 출시된 적이 없는데도 국내의 어떤 인터넷 카페와 연결되는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올드시네(Oldcine)’라고 하는,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수년 전부터 이곳에서는 두 달에 한 번 정도 국내에 출시되지 않은 희귀영화의 원본을 구해 여기에 한글자막을 올려서 상영회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2013년 2월의 상영 예정작이 <리자의 연인>이라고 예고되어 있어 필자에게 검색되었던 것이다.

필자는 사실 영화를 많이 좋아하는 편이나 근년에는 극장 가기가 번거로워 거의 안 가고,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DVD나 인터넷에서 영화를 다운받아 보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이 카페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극장에서는 물론, DVD로도 볼 수 없는 영화들이었다. 그래서 바로 그 카페에 가입하였고 그 해 12월에는 <밤하늘의 블루스>라는 주제가가 너무나 유명했던, <날이 새면 언제나>라는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영화상영 장소는 지하철 3, 4호선이 교차하는 충무로 역 안에 있는 ‘오재미동’이라는 소극장이었는데, 지하철 역 안에 그런 소극장이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해, 즉 2013년 2월에는 물론 후배 C씨와 함께 <리자의 연인>도 감상하였고 그 다음 달인 3월에는 정기상영이 아닌 번개상영으로 필자가 무척 좋아했던 알랭 들롱의 <아가씨 손길을 부드럽게>도 감상할 수 있었다. 그 후에도 많은 희귀영화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2014년 10월에는 압구정동의 ‘무지크 바움’이라는 소극장에서 <그림자성>이라는 외국영화와 함께 국산영화 <어제 내린 비>를 이장호 감독과 이 감독의 친동생이자 주인공의 한 사람이었던 이영호 씨와 같이 감상하고 뒤풀이도 함께 하는 이벤트도 있었다. 이 카페 몇몇 회원들의 영화에 대한 수준은 상상을 초월하여 그들이 카페에 올린 글들을 읽어가며 필자의 영화에 대한 안목을 몇 단계 높여가고 있는 중이다.

필자가 보유한 영화 중에는 국내에서 출시되지 않아 해외에서 구입한 것이 약 200 여 개 된다. 또 10여 년 전에는 수년간 TV에서 방영하는 영화 중 집에 없는 것은 거의 다 녹화한 적이 있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국내에 출시되지 않은 것들로서 그런 것들만도 400 여 개가 된다. ‘Oldcine’의 회원 중에 꽤 잘 알려진 영화감독 Y씨는 자신의 소극장을 마련하여 상영할 꿈을 가지고 희귀영화를 열심히 모으고 있었다. 그가 필자의 집을 방문하더니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 수 년 동안 그렇게 애를 써도 구할 수 없었던 희귀영화들이, 그것도 수백 개가 한꺼번에 눈앞에 있으니 그야말로 노다지였던 것이다.

필자 역시 모처럼 소장품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을 만난 것이 기뻐 아무 조건 없이 그가 원하는 모든 영화를 빌려 주었고 필자도 그동안 구하지 못했던 <물망초>, <하녀(河女)>, <날이 새면 언제나>, <안개 낀 밤의 데이트>와 같은 영화들을 구할 수 있었다. 그는 그 꿈을 이루어 2013년 11월, 강화도 동감도에 DRFA 365 예술극장을 완공하여 운영하고 있다.

우리 나이또래들이 대개 비슷했겠지만 필자가 영화를 본 것은 아마 국민학교 때 동네 주차장에서 본 무성영화 <검사와 여선생>이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아버지를 따라 <보물섬>이라는 영화를 보러 갔던 것도 기억이 난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학교 강당이나 단성사에서 심심찮게 단체관람을 시켜 주었는데 <사막은 살아 있다>, <사랑의 종이 울릴 때>, <애정>(나중에 <가장 특별한 선물>이라는 제목으로 DVD가 나왔다), <바다 밑 2만리>, <세레나데>, <셴>, <들장미>, <보리수>, <자이안트>, <쿼 바디스>, <데미트리아스(성의)> 등과 같은 영화들이 떠오르지만 기억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벤허>, <남태평양> 같은 영화들을 대한극장에서 70㎜로 보았던 것 외에는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기는 4·19와 5·16의 북새통에 단체 관람할 여유도 별로 없었을 것이다.

이들 영화는 모두 다 어렸을 때의 즐거웠던 추억으로 남아 있으며 특히 <사랑의 종이 울릴 때>가 많이 좋았던 것 같다. 이 영화에서 위대한 재즈 코르넷 연주자이자 경음악단 화이브 페니스의 단장인 레드 니콜즈의 역할을 맡은 다니 케이는 시골뜨기 음악가 역할을 호들갑스럽게 잘 해 내고 있으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재즈 음악가로 평가되고 있는 사치모(Satchmo; 입이 큰 사람이라는 뜻의 별명) 루이 암스트롱이 트럼펫 연주와 함께 그의 특이하게 구성진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여기에 당대 빅 밴드의 상징이었던 밥 크로스비, 레이 앤서니, 쉘리 맨 등이 합류하여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

또 뒤에 미국의 인기 TV 연속극 ‘달라스’의 여주인공으로 인기 절정에 오른 바바라 벨 게즈와 뒤에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등에 출연한 튜스데이 웰드가 10대로 데뷔하여 열연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20곡 이상의 재즈 명곡이 연주된다. 그중에서도 전설적인 스캣창법과 함께 루이 암스트롱과 다니 케이가 듀엣으로 연주하는 ‘성자들의 행진’은 잊지 못할 감흥을 준다. 이 영화는 또 정겹고 애틋한 부정(父情)을 그린 가족드라마이기도 한데 비디오로 다시 보아도 그때의 즐거움을 비슷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어린 소년 조디가 부모 잃은 아기사슴 플랙을 기르다가 사슴이 다 자라서 농작물을 훼손하게 되자 아버지가 아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사살하게 되는 <애정>이라는 영화는 당시에는 굉장한 감명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다시 보니 나이 탓인지 그때와 같은 감명은 느낄 수 없었다.


▲임성빈 월드뮤직센터 이사

1944년 서울 출생.

아호 무애(無碍). 경기고, 서울대 토목공학과 졸. 서울대대학원 교통공학 박사. 서울대, 명지대 토목공학과 및 교통공학과 교수 역임. 현재 명지대 명예교수, 서울특별시 무술(우슈)협회 회장 홍익생명사랑회 회장, 월드뮤직센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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