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뒤흔드는 허망한 이야기들

기사입력 2016-10-27 09:20 기사수정 2016-10-27 09:20

▲어린아이가 기른 아름다운 꽃(백외섭 동년기자)
▲어린아이가 기른 아름다운 꽃(백외섭 동년기자)
인품 훌륭한 주례의 걸쭉한 주례사는 결혼식장의 분위기를 한껏 북돋운다. 하지만 주례가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문제가 확 달라진다. 실천할 방법도 의지도 없는 허망한 이야기가 오늘도 세상에 차고 넘친다.

얼마 전 친구의 아들 결혼식에 참가했다. 늦장가 보내는 친구는 연방 싱글벙글 입이 귀에 붙었다. 주례는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입담 좋은 내용이었다. “부부는 무엇보다 진실한 사랑이 제일이다”라고 말하면서 한껏 분위기를 띄웠다. 주례가 홀아비급 노총각인 줄 모르는 하객들은 그가 하는 말을 들으면 큰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은퇴 후 사회평생교육장에서 느낀 일이다. 은퇴 경험도 없는 젊은 강사가 마치 은퇴생활 숙련자처럼 소설을 썼다. 암에 걸렸던 경험도 없으면서 “암에 걸리면 치료하지 않고 산에서 살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한 은퇴자는 ‘순례길’을 걷고 나서 마치 득도라도 한 양 거드름을 피웠다. 적어도 30년 더 살아가야 하는 시니어들 중 누가 공감하겠는가?

중국 춘추전국시대, 오월동주로 잘 알려진 월왕 구천은 오왕 부차에게 복수하기 위해 와신상담했다. 부차는 구천을 마지막으로 시험했다. “사는 길은 부차의 대변을 핥는 것뿐”이라는 충복의 진언을 따른 구천은 호구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목숨을 구한 것이 감개무량하여 “너만을 사랑해!” 했다.

하지만 구천은 치명적인 굴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심복이 몹시 부담스러웠다. 상전에게 대변까지 먹인 그는 대역죄인으로 몰려 토사구팽 제1호가 되고 말았다.

유방에게 좁쌀 한 움큼으로 호기를 부렸던 한신도 결국 토끼사냥 끝낸 멍멍이 신세가 되었다. 장량은 유방의 사랑을 믿을 수 없어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시저도 “너마저!”를 외치고 심복에게 목숨을 맡기고 말았다. “너만을 사량해”를 온전히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믿기도, 믿음을 얻기도 어렵다. 눈앞에서 ‘충성경쟁’을 하는 부나비의 정체를 알 수도 없다. 어느 순간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기 위해 말안장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것이다. 경쟁자는 가까이에 있다. 멀리 있으면 적이 아니다.

대기업에서 정년퇴직한 후 중견기업에 재취업했던 친구가 있다. 제조업을 하는 그 회사는 4부자가 순서에 따라 회장·부회장·사장·부사장을 담당하고, 산업재편에 따라 수백 명 도심공장을 지방으로 분산 이전 중이었다. 몇 년 전 “몸무게가 10킬로그램 넘게 빠지고 잠도 잘 수 없다”는 친구의 하소연 전화가 왔었다.

막걸리 잔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로한 회장의 후계 체제 구축 과정에서 3형제가 과열경쟁을 하는데 문제가 있었다. 회장은 영입한 전문경영인 친구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필사적이었다. “나만을 믿어라”는 기본 합창이었다. 날이 갈수록 배는 산으로 가고 갔다.

창업주 부친의 사업이 폐지되는 상황에도 자식들은 자기 몫 챙기기에 급급했다. “회장과의 인연을 생각해 구조조정 마무리를 잘하고 명예롭게 사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친구는 사심 없이 구조개혁을 완수했다. 3형제의 분가까지 잘 마무리해주고 짐을 쌌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했다”는 친구의 말은 나중에서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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