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엄격하고 바르게 해석돼야 한다. 현대사의 격랑을 겪었던 시니어라면 더더욱 이렇게 느낄 것이다. 하지만 비교적 멀리 있는 역사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다면 한층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역사의 빈 부분에 상상을 채워, 역사보다 더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영화를 소개한다. 이 작품들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날 수 있다.
관상(The Face Reader, 2013)
양반가 자제였으나 역모의 혐의를 쓴 채 산속에 칩거하며 살던 천재 관상가 내경(송강호). 그는 관상 보는 기생 천홍(김혜수)의 제안으로 한양에서 관상을 보게 되고, 용한 관상쟁이로 이름을 날린다. 내경의 소문은 김종서(백윤식)의 귀에 닿고, 김종서로부터 사헌부를 도우라는 명을 받아 궁에 들어간 내경은 수양대군(이정재)이 역모를 꾀하고 있음을 알고 김종서를 도와 단종을 지키려고 한다.
영화 ‘관상’은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계유정난을 배경으로 한다. 수양대군의 역모 세력과 단종을 지키려는 세력 사이에 어느 관상가가 개입했다는 설정을 담은 영화다. 조선의 운명을 바꾸려는 관상가 내경과 ‘이리의 상’을 하고 왕이 되고자 하는 야심가 수양대군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과연 내경은 관상을 통해 사람의 운명을 넘어 시대를 읽어낼 수 있을까.
왕의 남자(King and the Clown, 2005)
장생(감우성)과 공길(이준기)은 연산(정진영)과 그의 애첩인 녹수(강성연)를 풍자하는 놀이판을 벌여 한양의 명물이 된다. 하지만 왕을 희롱한 죄로 의금부로 끌려들어 간다. “왕이 보고 웃으면 희롱이 아니잖소! 우리가 왕을 웃겨 보이겠소!” 공길과 장생의 놀이패가 보인 공연이 흡족했던 연산은 광대들을 궁 안에 둔다. 궁에 들어온 광대들은 탐관오리를 풍자하는 공연을 해 중신들의 미움을 사고, 그들을 쫓아내려는 계략에 휘둘리고 만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에는 미천한 광대 신분으로 왕에게 간언했다가 참형 당한 ‘공길’이라는 인물에 관한 짧은 기록이 있다. 이 한 줄 기록으로 영화 ‘왕의 남자’가 탄생했다. 공연과 관료들에 대한 일갈의 경계선에 서 있는 광대들, 폭군으로 알려졌지만 생모를 잃어 슬픔에 잠긴 왕. 연출, 각본, 연기, 음악까지 모든 면에서 수작으로 꼽히는 ‘왕의 남자’는 저마다의 슬픔을 지닌 인물들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그려낸다.
광해, 왕이 된 남자(Masquerade, 2012)
광해군 8년, 2월 28일.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에는 “숨겨야 할 일들은 기록에 남기지 말라 이르다”라는 글귀가 남아있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에서 광해군 15일간의 행적은 영원히 사라졌다.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에 대한 불안함으로 난폭해지던 광해(이병헌)는 도승지 허균(류승룡)에게 자신을 대신해 위협에 노출될 대역을 찾으라고 지시한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광해가 쓰러진 15일간 왕과 똑 닮은 저잣거리의 만담꾼 ‘하선’이 왕의 역할을 대신했다는 상상에서 출발한 영화다. 광해군과 하선을 동시에 연기하며 눈빛과 말투가 순간순간 달라지는 이병헌의 연기가 압권이다. 영화는 가짜지만 진실하게 백성을 위했던 하선과 사대주의에 빠져 잇속만 챙기려는 관료들의 대비를 통해 누가 진짜로 ‘가짜’인가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