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이야기] 특별했던 성인체험

기사입력 2016-12-30 10:44 기사수정 2016-12-30 10:44

40여 년 전 중·고교 시절의 겨울방학은 성탄절과 거의 시작을 같이했다. 통금이 없는 성탄절과 송년 제야행사 그리고 구정, 봄방학으로 연결되는 겨울방학은 여름방학과 달리, 자유로움과 함께 한 살을 더 먹으며 성숙해지는 청소년기의 통과의례였다. 그래서 겨울방학이 지난 후에는 뭔가 분위기가 확 달라져 나타난 녀석들이 많았다.

필자에게도 그런 변화가 왔다. 바로 중동발 ‘오일쇼크’ 때문이었다. 급등한 원유 가격으로 인해 40일 정도였던 겨울방학은 두 달을 훌쩍 넘게 연장되었다. 어려워진 국가 경제와는 상관없이 어떻게든 머리를 더 기르려던 당시의 철없던 고교생들에게는 큰 희소식이었다.

특히 정신통일을 강조하시던 아버지 때문에 중·고교 시절은 물론 초등학교 때에도 항상 머리를 ‘빡빡’ 깎고 다녔던 필자는 빨리 대학생이 되어 장발로 경찰에게 잡혀보는 게 꿈이었다. 필자는 머리를 열심히 길렀고 수염도 안 깎았다. 매일 거울을 보는 재미가 너무 쏠쏠했다.

거의 대학생 수준의 행색이 되어가던 2월 어느 날, 당시 회사원이었던 작은 형이 무교동의 매우 고급스런 대형 맥주홀로 필자를 데려갔다. 세련되게 차려입은 수많은 여급들이 생맥주를 손에 들고 손님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며 술을 따라주고 있었다. 손님들 테이블에 앉지는 않고 살짝 미소를 머금으며 말없이 술을 따르는 그녀들에게서 특별한 기품이 느껴졌다. 당시 고교생 눈에 비친 여인들은, 단순히 유흥가에서 일하는 여성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내몰린, 뭔가 사연이 있는 듯한 여성으로 포장되었기 때문이리라. 빵집도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하던 그 시절, 머리와 수염을 기르고 유흥가에서 술까지 마신 고교생. 당연히 필자는 개학 후 친구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한껏 개폼을 잡으며 그날의 성인체험(?)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렇게 그 겨울방학의 ‘오일쇼크’로 필자는 또 훌쩍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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