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글쓰기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입력 2025-09-02 13:00

[AI 사용설명서] 이성숙 작가, 챗GPT로 두 달 만에 출간



소설가이자 시인, 수필가로 활동하며 계간 ‘문예바다’ 편집장을 맡고 있는 이성숙 작가. 최근 AI 글쓰기를 연구하고 강의하며 시대 변화에 맞선 새로운 창작법을 모색 중이다. 문학 그리고 AI라는 다소 이질적인 키워드를 자연스럽게 엮어내는 그의 시선에는 글쓰기의 본질과 미래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


“앞으로 5년 뒤 우리가 아는 직업의 모습은 크게 달라질 겁니다. 작가도 예외가 아니죠. 이제는 누구나 AI를 이용해 글을 쓸 수 있는 시대예요. 그렇다면 진짜 작가는 무엇으로 구별될까요? 바로 창의력입니다.”

이성숙 작가가 처음 AI에 주목한 것은 2023년 겨울이다. 대화형 인공지능 모델 ‘챗GPT’가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면서 “인간의 역할이 일부 대체될 것이다”, “몇몇 직업은 곧 사라진다”는 보도가 쏟아지던 시기였다. 그는 호기심과 위기감을 동시에 느끼며 관련 도서와 보고서를 찾아보고 공부에 매달렸다.

“당시에는 AI에 대한 관심도가 지금보다 낮았습니다. 심지어 회의적이기도 했어요. 물론 AI가 있으면 미래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기대와 흥미를 갖는 사람들도 있었지만요. 대부분 먼 이야기로 치부하고, 그저 영화나 만화 같은 장르로서의 AI를 상상했죠. 실질적인 개발과 상용화에 대해서는 눈에 띄는 논의가 오가지 않았던 거예요.”


AI와 함께한 집필

새롭게 등장한 ‘도구’를 본업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 끝에 이 작가는 AI를 단순한 기술이 아닌 글쓰기 파트너로 받아들였다. 지난해 그는 챗GPT와 함께 ‘AI 활용, 단숨에 뚝딱! 책쓰기’를 출간했다. 책 표지에 공저자로 챗GPT를 올린 것도 그 의지의 표현이었다. 협업 과정에서 얻은 가장 큰 성과는 단연 ‘시간 단축’과 ‘진입장벽 완화’였다.


“평소라면 책 한 권을 완성하는 데 2년 정도 걸리지만, AI의 도움을 받으니 두 달 만에 출간이 가능했어요. 글을 써본 적 없는 사람이라도 초안은 쉽게 완성할 수 있겠더라고요.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이후입니다. AI가 제공한 문장을 그대로 옮기는 건 인간의 역할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죠. 어떻게 ‘자신의 언어’로 다듬느냐가 글의 완성도를 좌우합니다.”


조종사와 부조종사

그는 인간과 AI의 관계를 ‘파일럿(조종사)과 코파일럿(부조종사)’에 비유했다. 결국 조종간을 쥔 주체는 인간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AI가 구성한 초안이 참고가 될 수는 있으나, 글을 예술로 승화하고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결국 인간의 몫이라는 설명이다. 이 작가는 예술적 허용과 창의적 조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미국 캘리포니아의 양귀비 꽃밭에서 사람 군집을 보고 ‘인화(人花)’라 표현한 경험을 예로 들었다. 챗GPT에게 해당 단어가 포함된 문장을 제시했더니 사전적 의미 그대로 사진 ‘인화’라고만 해석했다.

“인간만이 기억과 감정을 바탕으로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요. 창의성은 기계가 결코 대체할 수 없습니다. 또 AI가 써낸 글은 일정하고 깔끔한 구조를 유지하는 반면 묘사된 인물은 평면적이고 감정이 비어 있어요. 사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기도 하고, 양면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잖아요. 불규칙성과 복합성이 인물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요소죠. 하지만 AI는 이 미묘함을 서술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 인간 작가의 감각이 꼭 필요해요.”


글쓰기의 진입장벽을 낮추다

이 작가는 “AI 글은 출발선일 뿐, 자기 언어와 경험으로 다듬지 않으면 깊이 없는 결과물이 된다”고 강조한다. 문제의식 속에서 그는 다양한 내용을 담은 AI 글쓰기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강좌에는 글감 찾기, 주제 설정 등 전통적인 글쓰기 과정도 포함된다. 여기에 AI를 접목해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거나 초안을 다듬는 방식을 보여줌으로써, 수강생이 글쓰기를 실질적으로 체득하도록 돕는다. AI를 창작 파트너로 삼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춘 셈이다.

강좌는 은퇴를 앞뒀거나 은퇴 후 ‘나만의 책’을 쓰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동안 글쓰기를 두려워했던 이들이 기술을 통해 글쓰기에 도전할 수 있게 길잡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주 예전에는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쓰고 싶어도 문장력이 부족하면 대필 작가를 고용해야 했습니다. 비용도 부담스럽고, 결과물은 남의 글 같았지요. 이제는 AI 덕분에 누구나 직접 집필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수강생들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걸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문학 현장의 실험

이성숙 작가는 문예지 ‘문예바다’의 편집장으로서도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2025년 봄호는 ‘AI 문학 특집’으로 꾸몄고, AI를 활용한 작품을 실어 신인을 등단시키는 파격적인 시도도 서슴지 않았다.

“AI를 활용한 창작이 문단에서 아직은 낯설게 받아들여지지만, 흐름을 거스를 순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늦게 수용하기보다는 먼저 경험하고 검증해보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어요. 변화를 두려워하며 기존 방식만 고집하지 말고, 누군가는 그 문을 열어야 합니다.”

실험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우선 ‘AI 활용, 단숨에 뚝딱! 책쓰기’ 개정판 발간을 염두에 두고 있다. 챗GPT 출시 초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터라, 기본적인 프롬프트 입력법과 단순 활용 사례를 소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개정판에서는 더 전략적인 프롬프트 설계로 AI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담아낼 계획이다. 이외에도 ‘기억을 감정으로 번역하기’라는 새로운 강좌를 준비 중이다. 여행을 주제로 관련 경험을 언어로 전환하는 훈련법을 전하고자 한다.

“여행을 다녀온 뒤 며칠만 지나도 기억 속에는 ‘파리에 다녀왔다’는 사실 정도만 남기 쉽습니다. 사진을 꺼내 보지 않으면 세세한 장면은 희미해지고, 당시의 설렘이나 아쉬움 같은 감정도 금세 옅어지죠. 저는 순간을 언어로 붙잡아두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추억을 다져두면, 시간이 흘러도 일상을 살아낼 힘이 되니까요. 앞으로도 다양한 활동을 통해 AI와 인간이 서로의 한계를 보완하며 공존할 수 있는 문학의 길을 꾸준히 탐구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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