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가 ‘인공지능과 노동’ 녹서를 통해 제시한 12개의 핵심 질문이 한국 중장년·고령자 노동시장 구조에 근본적 재검토를 제안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18일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 사회가 고민하고 대응해야 할 질문을 담은 녹서, ‘인공지능과 노동(우리 사회가 답해야 할 12가지 질문)’을 발간했다고 밝혔다. ‘인공지능과 노동’ 녹서는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10개월여 운영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인공지능과 노동 연구회’의 논의 내용 위에, 연구회 전문가위원 및 관련 전문가 92인의 의견을 담았다.
보고서는 기술 발전이 단순 자동화를 넘어 사무직·전문직까지 빠르게 대체·보완하는 가운데, 생산가능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한국의 인구 구조가 중첩되면서 “정년 연장·정년 폐지 논쟁에 앞서 생애 노동 설계 전체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가 가장 우려한 대목은 ‘기존 숙련의 급속한 진부화’다. 반복적 업무가 자동화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이번 녹서는 AI가 일정 관리·보고서 작성뿐 아니라 의료 영상 판독, 프로그래밍, 법률 문서 초안처럼 중간·고숙련 인지 노동까지 빠르게 대체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40·50세대를 중심으로 한 중장년층에서 ‘직무 소멸’ 위험이 집중적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AI 전환으로 소득 분배율 변화가 특정 연령대·직무군에 불균등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도 더해졌다.
반면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지금, 우리사회에선 노동공급 부족이 현실화되고 있다. 경사노위는 “AI가 인력 공백을 일정 부분 메울 수 있지만, 남아 있는 인간 노동의 질과 안정성을 보장하지 않으면 새로운 불평등이 고령층에서 집중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기술 발전이 가져오는 효율성 향상에도 불구하고, 중장년층의 고용안전망이 약화되면 정년 연장 여부와 무관하게 노동시장 탈락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다.
보고서는 특히 고령층 재고용 구조와 관련해서, 정년 자체가 인구·기술 환경 변화에 맞지 않는 제도적 틀이라는 문제의식도 언급했다. AI에 의해 일의 내용이 빠르게 재편되는 상황에서는 ‘나이’보다 ‘숙련의 최신성’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따라서 정년 연장과 정년 폐지 어느 쪽이든, 고령자 계속고용의 기본 전제는 ‘재교육·전환훈련·적응지원 시스템의 구축’이라는 점을 녹서는 강조했다.
노동법적 대응의 한계도 지적됐다. 현행 해고 제한·근로계약 규정이 AI 전환 과정에서 고령 노동자 보호에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AI 기반 인사·평가 시스템이 고령층에게 불리한 편향을 보일 경우, 이를 다룰 제도적 절차와 감독 체계가 미흡하다는 점을 보고서는 문제로 제시했다.
경사노위는 이번 녹서가 정답을 제시하는 문서가 아니라, 사회적 논의가 풀어야 할 질문을 던지는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경사노위는 “향후 노사정은 기술·노동·인구 구조를 결합해 장기적 정책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며 “AI 시대 중장년 노동의 미래는 준비하는 만큼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