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길 잇다

입력 2025-12-12 06:00

[Monthly Issue] 유일한 병원급 치매안심병동, 서북병원

서울특별시 서북병원 이창규 원장, 송은향 과장


(스민스튜디오)
(스민스튜디오)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 누구나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사회. 서울시 최초로 보건복지부 지정 ‘치매안심병동’을 운영하는 서울특별시 서북병원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은 중증 치매 환자에게 약물치료와 비약물치료를 병행하고, 가정과 지역사회로의 복귀를 돕는 통합 공공의료 모델이다. 이창규 병원장과 송은향 신경과 과장을 만나 ‘치매 이후의 삶’과 ‘공공의료의 책임’에 대해 이야기했다.


서울시 최초 치매안심병동

서울특별시 서북병원은 2024년 3월, 서울시 최초로 보건복지부 인증 치매안심병동을 개소했다. 이곳은 기존 치매병동을 보건복지부의 엄격한 인증을 통해 치매안심병동으로 개편한 곳으로, 행동·심리 증상이 심해 가정이나 요양시설에서 돌보기 어려운 중증 치매 환자를 집중 치료하는 병동이다.

“치매안심병동의 목적은 단순한 치료가 아닙니다. 환자가 다시 가정으로, 지역사회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핵심이에요.”

▲스노젤린실을 둘러보며 이창규 원장과 송은향 과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스민스튜디오)
▲스노젤린실을 둘러보며 이창규 원장과 송은향 과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스민스튜디오)

이창규 원장은 공공병원으로서의 사명을 이렇게 말했다. 치매안심병동은 ‘집 같은 병원’을 모토로 설계했다. 창호지 무늬 창문과 따뜻한 조명, 환자 전용 공용 거실과 프로그램실, 1인실과 스노젤린실(다감각 자극 치료실)까지 갖춘 환경에서 치매 환자들은 미술·음악·작업치료를 병행한다.

송은향 과장은 “치매안심병동에서 행동·심리 증상이 안정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환자들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면서 병원은 ‘머무는 곳’이 아니라 ‘돌아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공공병원이 지켜야 할 돌봄의 품격

서북병원의 치매안심병동은 서울시·복지부 예산 지원을 바탕으로 병동 시설을 대폭 개선하고, 의사·간호사·심리사·사회복지사를 비롯해 미술·음악·작업치료사 등 다학제 전담팀이 함께 환자를 돌본다. 매주 회의에서 관찰기록을 공유하고, 맞춤형 치료 계획을 세우며, 약물치료와 비약물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송 과장은 “비약물치료는 치매 치료의 또 다른 축”이라며 “약물로 증상을 완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약물치료를 통해 환자의 감정과 정서를 회복시키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술치료는 집중력 향상과 정서 안정에, 음악치료는 우울 완화에, 작업치료는 전산화 인지훈련을 통해 기억력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미술치료 활동을 설명하는 이창규 원장.(스민스튜디오)
▲미술치료 활동을 설명하는 이창규 원장.(스민스튜디오)

병동은 단순히 ‘입원 치료’를 제공하는 곳이 아니다. 치매안심센터, 요양시설, 보건소 등 지역사회 기관과 긴밀히 연계해 환자가 퇴원 후 가정과 사회로 원활히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곳의 목표는 치료의 완결이 아니라, 환자가 일상 속에서 다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퇴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믿음이 병동 운영의 핵심 철학이다.

이 원장은 이런 것이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서북병원은 단순한 치료기관이 아니라 치매 환자와 가족,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공공의료의 허브입니다. 우리가 돌보는 것은 환자가 아니라 그 사람의 삶 전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공의료 없이는 치매 대응도 없다

서북병원은 치매안심병동을 운영하면서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들을 치료하고, 지자체·복지관·치매안심센터와 협력해 ‘서울형 치매통합관리 모델’을 실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병동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인력과 예산이 필수적이다. 중증 치매 환자 한 명을 돌보기 위해 일반 병동보다 두 배 이상의 간병·간호 인력이 필요하지만, 현행 제도에는 치매안심병동에 관한 별도 수가 기준이 없어 공공병원이 자율적으로 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원장은 “호스피스 병동처럼 인력과 수가 기준이 마련돼야 공공병원이 장기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치매는 더 이상 개인의 질병이 아니라 사회적 과제다. 공공병원이 존재해야 사회가 돌봄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스민스튜디오)
(스민스튜디오)
현재 서울에서 병원급 치매안심병동을 운영하는 곳은 서북병원이 유일하다. 이에 병원장과 의료진은 ‘공공의료형 치매안심병동’의 지속과 전국 확산을 위해서 △인력·수가 중심 제도 개선 △지역별 거점 치매병상 확충 △지방자치단체·정부의 장기 재정투자 등이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송 과장은 “‘중증 치매 문제행동 환자’를 치료·연계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며 권역별로 거점병원이 생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치매는 누구나 걸릴 수 있지만 막을 수도 있다

(란셋)
(란셋)

이 원장은 ‘란셋(Lancet)’이 발표한 치매 위험 요인 14가지를 언급하며 “연구에 따르면 치매의 45%는 관리로 예방이 가능하다. 특히 중년기(40~60세) 생활 습관이 결정적이다”고 말했다.

그는 청력 감소(7%), 고혈압(2%), 당뇨(2%), 비만(1%), 높은 LDL 콜레스테롤 수치(7%), 우울감(3%), 사회적 고립(5%), 신체활동 부족(2%), 대기오염(3%), 흡연(2%), 과도한 음주(1%) 등 다양한 요인을 짚으며 “결국 치매 예방의 해답은 특별한 게 아니다. 운동, 절주, 금연 등 모두가 알고 있는 평범한 생활 습관이 치매를 늦춘다”고 설명했다.

송 과장은 여기에 “삶의 태도와 관계망이 치매를 늦추는 데 큰 역할을 한다”면서 미국 미네소타대 데이비드 스노던 박사의 ‘수녀 연구(Nun Study)’를 예로 들었다.

(스민스튜디오)
(스민스튜디오)
“이 연구는 40여 년간 600여 명의 수녀를 추적한 결과, 뇌 병리상 치매 진단 기준에 부합했음에도 끝까지 인지기능을 유지한 수녀들이 있었음을 밝혀냈습니다. 그 비결은 꾸준한 학습, 사회참여, 봉사였어요. 이런 활동이 뇌 손상이 있어도 기능을 유지하게 한 것이죠.”

치매는 두렵지만, 피할 수 없는 시대의 병이다. 그러나 서북병원 현장은 치매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치매는 혼자만의 병이 아닙니다. 공공의료가 곁에 있다면 그 누구도 버려지지 않습니다.”

이창규 원장의 이 말은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가리킨다.


▲미술치료 활동 시 완성한 작품들(서울특별시 서북병원)
▲미술치료 활동 시 완성한 작품들(서울특별시 서북병원)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더 궁금해요0

관련 뉴스

  • “치매보험, 40~50대가 가입 적기…경증 치매 보장 잘 살펴봐야”
    “치매보험, 40~50대가 가입 적기…경증 치매 보장 잘 살펴봐야”
  • 주형환 부위원장 "고령자 재산보호 국가 책임 강화해야"
    주형환 부위원장 "고령자 재산보호 국가 책임 강화해야"
  • ‘치매머니 154조’ 고령자 재산 보호 방안은…“후견·신탁 재설계 필요”
    ‘치매머니 154조’ 고령자 재산 보호 방안은…“후견·신탁 재설계 필요”
  • 부동산·예금에 갇힌 고령자산…신탁이 구조 바꿀까
    부동산·예금에 갇힌 고령자산…신탁이 구조 바꿀까
  • “행복한 나이 듦 이렇게” 아시아 웰니스 전문가 원주에
    “행복한 나이 듦 이렇게” 아시아 웰니스 전문가 원주에
저작권자 ⓒ 브라보마이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브라보 스페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