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치 한 번으로 음식이나 상품을 주문하듯, 함께 시간을 보내 줄 ‘손주’를 호출하는 서비스가 있다면 어떨까. 초고령사회로 접어들고 자녀가 없는 무자녀 노인가구가 늘어나는 우리 사회에서 한 번쯤 상상해 볼 만한 이 발상은, 이미 일본에서 현실이 됐다.
일본의 명문대학으로 꼽히는 교토대 출신의 창업자가 만든 한 스타트업이 고령자와 대학생을 잇는 이른바 ‘손주 대행 서비스’로 일본 사회에 새로운 돌봄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주식회사 위커(whicker)가 운영하는 ‘마고토모(まごとも)’는 손주 세대 대학생이 고령자의 집을 방문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외출을 돕고, 스마트폰·디지털 기기 사용을 지원하는 매칭 서비스다. 단순한 말벗이나 가사 지원을 넘어, 고령자의 ‘마음의 노화’를 돌보는 것을 전면에 내세운 점이 특징이다.
청년이 고령자 마음 위로하는 돌봄 서비스
위커는 교토대 대학원생 야마모토 토모카즈 대표가 2022년 설립한 스타트업이다. 그는 요양시설 아르바이트 경험을 통해 고령자와 젊은 세대 사이의 단절 문제를 몸소 느낀 것이 창업의 출발점이었다. 야마모토 대표는 대학 시절을 돌아보며 “젊은 세대가 평소 접하기 힘든 ‘시니어’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진 어른들과 교류하며 성장할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마고토모의 기본 구조는 단순하다. 손주 세대의 대학생이 고령자의 집을 방문해 산책·쇼핑에 동행하고, 집에서는 말벗이 되어 시간을 보낸다. 이 과정에서 스마트폰·태블릿 등 디지털 기기의 사용법을 알려주거나, 온라인 회의 시스템 사용을 도와주는 등 디지털 지원도 함께 이뤄진다. 핵가족화와 도시화로 가족과 떨어져 사는 1인 고령 가구가 늘고, 장시간 TV 시청 외에는 대화 상대가 없는 일본 고령층의 현실을 감안한 설계다. 학생이 방문한 뒤에는 활동 내용을 사진과 함께 간단한 보고서 형식으로 가족에게 전달해, ‘잘 지내고 있다’는 안심하도록 돕는 서비스도 갖췄다.
그가 문제의식을 느낀 것은 기존 개호(돌봄의 일본식 표현) 서비스의 성격이었다. 현장 조사 과정에서 많은 서비스가 식사·배설·목욕 등 ‘생존을 위한 최저한의 육체적 보조’에 치우쳐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야마모토 대표는 위커 유튜브 채널에 직접 출연해, “서비스가 생활의 최저한의 보조에만 머물러 있었고, 정작 어르신들이 원하는 ‘즐거움’이나 ‘대화’는 중시되지 않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육체적 노화는 돌리지 못해도, 고독으로 인한 ‘마음의 노화’는 젊은이들의 에너지로 되돌릴 수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위커는 자신들의 모델을 ‘육체의 돌봄’이 아닌 ‘마음의 돌봄’로 규정한다.
고령자 아닌 ‘부모를 걱정하는 4050’ 겨냥
초기 구상은 지금과 달랐다. 야마모토 대표는 “처음엔 어르신들이 우버(차량 공유 서비스)처럼 직접 학생을 부르는 앱을 상상했다”고 회상했다. 스마트폰으로 간단히 호출해 학생이 찾아오는 그림을 그렸지만, 현실의 장벽은 높았다. 고령자 상당수가 앱 설치와 이용에 어려움을 겪어 서비스 이용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현실은 어르신들이 앱 설치조차 어려워하신다는 거였다”며 “그래서 전략을 수정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서비스의 주요 고객층은 시니어에서 40~50대 자녀 세대로 이동했다. 현재 마고토모는 ‘부모님의 외로움을 걱정하지만 바빠서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4050 자녀 세대’를 핵심 타깃으로 삼는다. 야마모토 대표는 “부모님의 외로움을 걱정하지만 바빠서 찾아뵙지 못해 죄책감을 느끼는 4050 자녀 세대를 타깃으로, 그들이 부모님을 위해 이용하는 서비스로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자녀가 스마트폰 앱을 설치해 예약을 하면, 대학생이 부모를 찾아가 시간을 보내는 구조다. 일본에서 가족 수발 부담을 떠안고 있는 ‘가족 간병인’층을 명시적인 고객으로 설정한 셈이다.
신뢰 확보도 넘어야 할 과제였다. “검증되지 않은 학생을 어떻게 믿느냐”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위커는 교토시의 인증을 받고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하는 방식으로 안전장치를 보완했다. 학생 선발 기준과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사고 발생 시 보상 체계를 갖추면서 “안전장치 없는 단순 매칭 서비스가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자격있나” 비난 목소리도
일부에서는 ‘무자격 학생이 돌봄 현장에 나선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야마모토 대표는 “우리는 신체적 간병을 하는 ‘프로’가 되려는 게 아니다”라며 “어르신을 즐겁게 해 드리고 마음을 채워드리는 일이라면, 베테랑 간병인보다 손주 같은 젊은이가 더 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육체적 케어는 전문가에게, 정신적 활력은 우리에게 맡겨 달라”며, 의료·돌봄 전문가와의 역할 분담을 전제로 한 서비스임을 강조한다.
위커는 각종 포럼과 심포지엄에서 마고토모 사례를 소개하며, 이 서비스를 “젊은이가 고령자의 고립에 다가가는 새로운 공조의 형태”로 규정하고 있다. 회사 측은 학생과 고령자가 친구처럼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국내 유학과 같은 경험’에 비유하며, 고령자에게는 자연스러운 사회참여 기회를, 학생에게는 다른 세대의 가치관을 배우는 학습의 장을 제공하는 서비스라고 설명한다.
이와 유사한 모델은 국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부 지자체나 대학에서 다양한 형태의 사업이 시도되고 있다. 서울시 용산구에서는 ‘할맘할파파’라는 노인-청소년 교류 사업을 진행한 바 있고, 최근엔 상명대학교에서 말벗도움 자원봉사활동이 있었다.
국내외 여러 연구에서 손주 세대와 정기적으로 교류하는 조부모가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삶의 만족도와 주관적 건강 수준이 높게 나타난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다음 세대에 무언가를 전해주는 역할’을 통해 노인이 생산성과 삶의 의미를 회복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이런 점에서 ‘마고토모’와 같은 손주 세대 매칭 서비스는 우리 사회에서도 청년 세대와 시니어를 잇는 새로운 돌봄 서비스가 등장할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게 하는 사례로 참고할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