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마음만 동동 구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이번 호에는 이후경 소설가가 먼저 세상을 떠난 선배에게 편지를 써주셨습니다.
순현 형, 하필이면 형을 보기로 했던 날, 만나서 형의 아내이자 내 친구인 J의 명예퇴직을 축하해주기로 한 날, 형은 쓰러졌지요. 바로 전날까지 테니스를 쳤던 건강한 형이 그길로 뇌사상태가 되어 열흘 뒤 간과 신장을 나눠주고 훌쩍 저세상으로 가버린 일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어요. 우리는 모두 불시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얼얼한 상태로 형의 장례를 치렀지요. 그런 자리에 빠지는 일이 결코 없는 형이 안 보이자 누군가, 순현 형이 왜 안 오지? 하는 실언을 했을 정도로.
코로나19 사태로 텅 빈 다른 빈소들과 달리, 슬픔에 겨워 달려온 조문객들로 북적였던 것만 뺀다면 사실 형의 장례도 평범했어요. 시장통처럼 번잡한 화장장에서 스산한 마음으로 대기하던 우리 모습도 유별날 건 없었지요. 그런데 그때 생각도 못한 사고가 생긴 거예요. 화장 예약이 실수로 취소되었다는!
장례지도사는 사색이 되어 ‘상조회사 1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며 어쩔 줄 몰라 했고, 우리는 우리대로 날벼락 같은 소식에 넋이 나갈 지경이었죠. 급히 다른 곳을 알아봤지만 가능한 곳은 두 시간이나 가야 하는 S시의 화장장, 그것도 다음 날 아침 7시 자리 하나뿐이었어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요. 너무 이른 시각이니 유족들은 S시로 내려가 자기로 했고, 조문객들은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갔지요. 나는 유족들을 따라 버스에 올랐어요. 날씨도 음울했고, 버스 안 분위기도 침울했지요. S시의 숙소가 코로나 때문에 그날부터 영업을 중지한다는 소식까지 들려오자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어요. 누구한테도 폐 끼치는 걸 싫어했던 형, 형처럼 선량한 사람의 마지막 가는 길이 왜 이래야 하는지, 나는 또 납득이 가지 않았지요.
화장장이 속한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넓은 공원에 세워진 깨끗한 건물이 텅 빈 채 기다리고 있었어요. 새 빈소에 영정을 옮겨놓고 형의 셋째 형님이 소주를 올리자 형의 얼굴이 단박에 환해진 듯싶었지요. 친구들과 조곤조곤 얘기하며 술 마시는 자리를 얼마나 좋아했던 형인가요. 방도 따뜻하고 아늑해서 형의 시골집에라도 놀러간 것 같았어요. 따로 숙소 구하지 말고 거기서 그냥 자자고 모두들 마음을 바꿨는데, 알고 보니 그날 밤 당직이 형의 처가 쪽 청년이었어요. 얼마나 신기했는지! 거기다 바람이나 쐬자고 건물 밖으로 나가니 이 3월에, 갑자기 함박눈이 쏟아지더군요. 우리는 한숨처럼 탄성을 뱉었지요. 말로는 전하지 못하는 어떤 것을 형이 간절하게 보내는 것만 같았어요. 마음이 서서히 풀려갔지요. 저녁 식사 자리도 참 좋았어요. 우리는 인사도 나누고, 형에 대한 추억도 나누었어요. 따뜻한 작별 파티에 초대된 느낌이었지요. 어릴 때 형 별명이 제비였다면서요? 8남매가 모여 얘기할 때면 일곱째였던 어린 형은 제비처럼 마루 끝에 앉아 듣기만 해서요. 어떤 선행도, 배려도 드러나지 않게 은은히 하던 사람, 그런 형이 맏형님 댁에 얹혀살던 몸으로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 때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요? 형수님의 얘기를 들으며 미루어 짐작만 해봤지요. 그런가 하면 여섯이나 되는 형의 처제들은 형이 아버지 같고, 오빠 같은 큰 형부였다고 그리워하더군요.
다시 빈소로 돌아와서도 작별 파티는 이어졌어요. 영정 속의 형은 여전히 제비처럼 가만히 듣기만 했지요. 얘기하다 형한테 술 한 잔 따르고, 술 마시다 형을 한 번씩 바라보고, 형과 함께 하룻밤 엠티를 온 것만 같았어요. 이 밤이 없었다면 너무 쓸쓸했을 거라고 누군가 말했지요. 알고 보니 예약 취소 버튼을 누른 건 순현 형이었나봐. 또 누군가 말하자 우리는 맞아, 맞아, 하며 웃음을 터뜨렸고요. 형의 몸이 머무른 마지막 밤은 그렇게도 기이하고, 아름답고, 정겨웠지요. 형의 죽은 몸은 아래층에 있다는데, 그 위의 절절 끓는 온돌방에 누워 자면서 나는 문득 삶과 죽음의 경계가 사라지는 느낌에 아득해졌어요.
다음 날 아침, 새벽부터 출발해 내려온 조문객들의 얼굴엔 어제의 비통함이 그대로인데, 장례식장에서 담요 한 장 깔고 잔 우리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환했지요. 하지만 그 신비한 하룻밤을 전할 길은 없었어요.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얻어진 그 하룻밤은 어쩌면 형이 우리에게 보내는 형다운 작별 인사, 작별 편지였던가요? 그렇다면 이 편지는 그 답장인지도 모르겠네요.
하루가 밀린 덕분에 형의 몸이 불타 가루가 되는 그 아침은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이었고, 하늘 또한 티 없이 맑았지요. 나는 비로소 조금씩 납득이 가기 시작했어요. 고마워요, 형. 이번 생에 만나서 정말 기뻤어요. 어디서, 무엇이 되어 태어나든 다시 만나면 더 반가울 거예요. 형은 그런 사람이었어요. 아무도 우러러 떠받들지는 않았지만 우리 모두가 조용히 사랑했던 사람, 잘 가요, 순현 형.
이후경 소설가
바다를 포함한 모든 물, 산신령을 포함한 모든 신, 만년필을 포함한 모든 문구류를 좋아하는 글 쓰는 사람. ‘저녁은 어떻게 오는가’, ‘달의 항구’, ‘저녁의 편도나무’ 3권의 소설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