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된 아시아, ‘2000조 원대 시장’ 돈의 길 바뀐다

입력 2025-12-18 12:00

CAPS, 韓 빈곤·고립 기회로 전환 필요… “시니어, 리더이자 경제 주체로”

(어도비 스톡)
(어도비 스톡)

아시아 고령화가 ‘복지 비용’이 아니라 ‘민간투자와 혁신의 시장’이라는 관점에서 자금의 흐름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국제 보고서가 나왔다. 홍콩의 싱크탱크 ‘아시아 필란트로피 소사이어티 센터(CAPS)’가 펴낸 ‘고령친화 사회 구축을 위한 아시아의 여정’ 보고서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6개 경제권을 대상으로 80개 이상의 민간 이니셔티브를 분석해, 민간 사회투자가 가장 큰 파급효과를 낼 수 있는 ‘5가지 전략적 우선순위’를 제시했다.

보고서는 정부 재정만으로는 급증하는 고령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고, 기업 자금은 통합된 해결책이 아닌 일회성 기부에 쏠리기 쉬우며, 임팩트 투자는 여전히 저평가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현장에서는 ‘자금 조달 격차’가 혁신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되고, 서비스 수요가 가속화되는 시점에 오히려 자금이 부족해지는 현상이 반복된다고 진단했다.

한국, 돌봄 체계 강화 등 숙제 해결해야

보고서는 한국의 현실을 숫자로 짚었다. 한국은 노인장기요양보험 기금이 2026년이면 고갈될 수 있고, 기여율이 상승하더라도 2070년까지 적자가 76조7000억 원(589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기업 퇴직 연령(55세 전후), 공적 퇴직 연령(60세), 연금 수급 자격 연령(60~65세) 간의 불일치로 인해 많은 노인이 5~10년간 안정적인 소득 없이 지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 한국은 노인 빈곤율(2020년 기준 40.4%)이 OECD 평균의 3배에 달하며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고령자의 고립 문제도 심각해, 한국 노인 3명 중 1명은 가사 도움이나 대화 상대를 의지할 사람이 전혀 없다고 답했다.

이러한 위기는 한국 기업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보고서는 민간 사회투자가 집중해야 할 5대 우선순위로 △고령화에 대한 인식 전환 △지역사회 기반 돌봄 △돌봄 체계 강화 △실버경제 확대 △기술 활용을 제시했다.

우선순위의 핵심은 시니어를 '부담'에서 '주체'로 바꾸는 것. 보고서는 한국의 연금 개혁 논쟁을 세대 갈등의 사례로 언급하며, 시니어를 리더이자 경제 주체로 포지셔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 사례로 55세 이상 시니어를 AI 데이터 감독 등으로 고용한 한국 기업 ‘에버영 코리아’와 중장년의 기술을 활용해 ‘앙코르 커리어’를 지원하는 ‘서울50플러스재단’의 프로그램을 높게 평가했다.

보고서는 프리미엄 호텔 서비스를 접목한 롯데호텔앤리조트의 브랜드 ‘VL’ 주거 모델이 완판된 사례를 들어 고령화를 긍정적인 라이프스타일로 재구성한 성공 사례로 꼽았다. 또한, 부유층과 저소득층 사이에서 소외된 ‘중산층’을 위한 저렴한 선택지 개발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돌봄 인력 부족과 기술 활용에 대한 통찰도 담겼다. 보고서는 단순히 기계적인 기술 도입보다 ‘기술과 인간적 배려의 결합’을 강조했다. SK텔레콤이 지자체와 협력해 독거노인에게 보급한 AI 스피커가 2024년 초까지 2만 가구에 도달하고 1300건 이상의 긴급 신고에 대응한 사례를 인간 중심 기술의 모범으로 소개했다. 또한 한국 스타트업 ‘보살핌’이 운영하는 케어 파트너 플랫폼처럼 유연한 소득을 찾는 은퇴 여성과 일상 지원이 필요한 노인을 연결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이 자산과 임팩트를 동시에 창출한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한국 기업이 ‘직장 내 돌봄 제공자 지원’이나 정부의 유닛케어 시범사업처럼 공공과 민간이 역할을 나눠 설계하는 협력 모델에 초기부터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시사한다. 고령층 돌봄 수요가 커지는 상황에서 이런 사업은 돌봄 공백을 줄이는 사회적 효과와 함께, 기업 입장에선 임직원 복지·인재 유지·서비스 실증 및 시장 선점으로 이어질 수 있어 ESG 성과와 신규 비즈니스 기회를 동시에 모색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고령친화 사회 구축을 위한 아시아의 여정’ 보고서 표지.(CAPS 제공)
▲‘고령친화 사회 구축을 위한 아시아의 여정’ 보고서 표지.(CAPS 제공)

2032년 아시아 시장, 2000조 규모로 성장

보고서는 기업들이 국내 시장을 넘어 아시아 전역으로 시야를 넓힐 것을 제안하면서, 각국이 처한 고령화 단계에 따른 맞춤형 진출 전략을 제시했다. 아시아-태평양 노인 돌봄 시장은 2024년 기준 약 9750억 달러 (약 1373조6000억 원) 규모다. 보고서는 기업들이 이러한 아시아 국가들의 혁신 모델을 벤치마킹하고 현지 파트너십을 통해 2032년 1조4900억 달러(약2099조2000억 원) 규모로 팽창할 아태지역 시장을 선점할 것을 권고했다.

이미 ‘초고령 사회’가 정착된 일본의 경우, 단순한 돌봄 기술을 넘어 일상 속에 녹아든 서비스 생태계가 강점이다. 일본의 사회적 기업 ‘CNC 주식회사’는 상점 주인이나 집배원을 ‘지역사회 간호사’로 훈련시켜 시니어의 고립을 방지하는 모델을 구축했다. 기술력을 갖춘 한국 기업이 일본 시장에 안착하려면 기기 판매를 넘어 일본 특유의 일상 밀착형 돌봄 리듬에 부합하는 솔루션이 필수적이다.

거대한 인구 규모를 지닌 중국은 IT 인프라와 물류 시스템을 결합한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 알리바바의 배달 플랫폼 ‘엘레메’는 전용 라이더를 통해 따뜻한 식사를 배달하며 독거노인의 안부를 실시간 확인하는 ‘스마트 급식 안전망’을 구축해 2025년 9월 기준 86만 건 이상의 배달을 달성했다. 보고서는 중국의 장기요양 종사자가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효율적인 플랫폼 기술이 중국 내 ‘서비스 불가능’ 지역의 격차를 메우는 핵심 수출 항목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향후 아시아 시장의 공통적 전망은 시니어를 자율성을 가진 적극적 소비자로 정의하는 ‘실버 경제의 주류화’다. 보고서는 아시아 전역의 시니어들이 디지털 예약 도구에 대한 불신과 고립감을 해결해주는 ‘하이브리드 지원’에 지갑을 열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중국의 여행사 ‘씨트립’은 온라인 예약에 오프라인 가이드를 결합한 모델로 충성도 높은 노년층 고객을 확보했다.

또한 대만의 ‘마보’처럼 노인들에게 익숙한 TV 화면을 영상 통화창으로 변모시키는 ‘포용적 디자인’과 기술 도입의 장벽을 낮추는 디지털 교육 패키지가 향후 아시아 표준 시장을 선점하는 핵심 경쟁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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