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아지트, 어머님의 그 자리

기사입력 2016-10-10 16:20 기사수정 2016-10-10 16:20

▲도봉산 자락에는 아늑하게 마련된 아지트같은 쉼터가 있다(양복희 동년기자)
▲도봉산 자락에는 아늑하게 마련된 아지트같은 쉼터가 있다(양복희 동년기자)
어머니는 마음의 고향이다.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면 언제나 가슴이 뭉클해진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어머니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자식들을 바라보시며, 집안의 가훈처럼 또 세 번만 참으라고 하신다.

어머니의 49제 의식이 모두 끝났다. 아버님은 몇 날 며칠 생각한 끝에 그 자리, 그곳으로 어머님을 모신다고 했다. 어느 날 힘없이 자식들을 불러 모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집 앞에 있는 경기대 뒷산, 형제봉으로 가자." 그곳은 어머님과 아버님이 운동 삼아 매일 함께 오르시고 도시락을 까먹고 차를 나누었던 자리라고 하셨다.

그곳에서 두 분은 늘 자식들 얘기와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시며 바람을 쐬고 쉬어가셨다. 아버님은 아주 담담하게 그렇게 하자고 하셨다. 자식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조용히 따르기로 했지만 너무 어이없는 일이었다. 누구라도 알아주던 부잣집, 몇천 평의 넓고 넓은 대궐 같은 농장 터를 놔두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아버님은 채비를 차리시고 어머님을 모시고 집을 나섰다. 큰형님 작은형님들 여자들은 모두가 뚱뚱한 체구라 걷기가 힘들다며 못 간다고 했다. 아버님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으셨다. 막내며느리인 필자는 돌아가는 상황들이 영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칠순이 넘으신 아버님, 남자 형제들은 함께 경기대 뒷산 형제봉으로 길을 나섰다. 피를 토하듯 대들던 셋째 형 가족은 49제에도 오지 않았다. 맨 앞에서 길을 인도하시는 아버님은 너무나도 정정하게 잘 걸으셨다. 어느새 낙엽이 떨어져 보이지 않는 길을 지팡이로 툭툭 쳐가시며 걸으셨다. 어머님과 함께 다니셨던 길이라 훤하게 꿰뚫고 계셨던 것이다.

자연의 푸름이 무거운 발걸음에 생기를 넣어주었지만 등산이 아닌 길이라서 가족들은 앞만 바라보고 걸었다. 모두들 아무 말 없이 조용했다. 구불구불 비탈진 길을 따라 몇 능선을 돌고 돌았다. 결코 만만치 않은 산행길이었다. 나이 드신 부모님이 어떻게 이 길을 다니셨을까.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때쯤 커다란 바위 밑 그늘지고 평평한 곳에 겨우 도착했다. 아버님은 바로 이곳이라며 손짓을 하셨다. 어머니를 모신 큰형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쩔쩔맸다.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막내며느리인 필자가 앞으로 나가서 어머니를 조심스레 받아 모셨다.

어머님이 앉아 계셨던 자리에는 낙엽들이 수북했다. 두 손으로 낙엽을 쓸어내고, 어머님의 육신이었던 유골 가루를 두 손으로 정중하게 모셔 군데군데 편안하게 뿌려드렸다. 하얀 가루로 변한 어머니가 춥고 외로워 보였다. 다시 낙엽과 흙을 모아 두툼하게 덮어드렸다. 그러고는 차마 일어날 수가 없었다.

어머님을 혼자 두고 내려오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아버님과 남자 형제들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몇 번을 뒤돌아 어머님이 계신 ‘어머님의 그 자리’를 바라보았다. 언젠가 다시 오리라 다짐하며…… 산다는 것이 그저 허무하기만 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웠지만 늘 검소하셨던 어머니, 그저 자식들 생각해서 퍼주시기만 하던 어머니가 어느 날 하루아침에 떠나가셨다. 어머니가 황망하게 가시고 그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져 결국 며칠을 앓아 누웠다. 어머님을 그렇게 보내드리고 필자는 또 다른 많은 교훈을 얻었다.

가끔씩 산행을 하다 고개 들어 두 팔 벌려 하늘을 바라본다. 어머님이 그 자리에서 환한 웃음으로 맞이해주신다. 어쩌다 어려운 일이 찾아오면 어머님을 떠올리며 삶의 모든 것들을 조용히 내려놓는다. 어느 날 가끔씩 어머님이 꿈에라도 나타나면 그날은 대박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들도 술술 풀려나간다.

'어머님이 계시는 그 자리'는 어쩌면 내 삶의 영원한 보금자리, 나만의 아지트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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