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오늘은 남편의 1주기, 그와 함께 남편에게 왔다. 그와 함께 찾아온 내가 남편한테 어떻게 비칠까. 옆에 선 그에게는 어떤 마음일까. 서운하고 괘씸할까? 분노하고 절망할까? 체념하며 인정할까? 거짓 없는 마음을 듣고 싶지만 유골함 옆 사진 속 남편은 여전히 속없는 웃음을 보일 뿐 아무런 말이 없다.
그도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죽은 자의 방 앞에 목례한 후 조용히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러고는 내 뒷모습을 응시하고 섰을 것이다. 내가 추모를 마칠 때까지. 나도 역시 말이 없다. 그를 의식해서도 그렇지만 남편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올 때마다 매번 말을 잃게 된다. 미안함, 사실 그것으론 미진하다. 뭐라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심사가 정체 모를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차라리 혼자 올걸. 그와의 동행이 남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뒤미처 든다. 그를 의식하지 않고 남편과만 있고 싶다. 남편 곁에 좀 더 머물고 싶다. 그러나 불편한 감정이 휘저어지기 전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곳을 벗어났다.
봉안당 마당을 걸어 나오는 동안 우리는 여전히 말이 없다. 늦가을 바람에 날리는 빛바랜 낙엽만이 둘 사이에서 수런댔다. 나도 그도 세상 떠난 남편에게 면목이 없어서일까. 그에게 죽은 남편은 어떤 마음, 어떤 존재인지, 나는 죽은 남편과 관련하여 그를 어떤 마음, 어떤 존재로 여기고 있는지 지금껏 한 번도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회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환갑이 되던 지난해 11월,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암 판정 3개월 만에.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그와 나를 더 가깝게 끌어당긴 건 아니다. 남편을 잃은 나를 그는 세심하게 위로하며 다정한 의지처가 되어주었지만 내 마음은 되레 그에게서 멀어졌다. 남편과 함께 만날 때의 그와 남편이 없는 상태에서 보는 그가 내게는 달리 비쳤기 때문이다. 처절히 슬프고 공허했지만 왠지 그에게 기대고 싶진 않았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것 같아 오히려 그를 멀리하고 싶어졌다.
남편은 세상 뜨기 3일 전, 그에게 나를 부탁한다고 유언을 남겼다. 자신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보살펴달라며. 그렇게 해준다면 편안히 눈을 감겠다면서. 죽어가는 사람의 말에는 거짓이 없다고 했던가.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남편의 진의, 속내가 궁금하다. ‘나 죽으면 너희 두 사람 어차피 함께 살 거니까 차라리 내가 선수를 치마. 그래야 두 사람도 맘 편히 살 거 아니냐’는 식의 자포자기적 선의였을까. 아니면 그렇게 말함으로써 정말 함께 살게 되었을 때 흐릿하나마 그와 나의 가슴에 죄책감의 주홍글씨를 새기고 싶었던 걸까.
그와 나는 잘 지내고 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나는 마님, 그는 돌쇠로. 그에게 나는 얼마간의 환상적 존재라는 걸 모르지 않지만, 남편이 가고 나니 둘 사이의 관계가 점점 더 그렇게 굳어지고 있다. 그는 이혼남이다. 5년 전 아내의 외도로 갈라섰다. 그가 이혼하기 전 우리는 부부가 함께 만났다. 그런데 지금은 그와 나만 남았다. 내 남편은 죽고, 그의 아내는 떠나고.
우리는 대학 선후배 사이로 그는 남편의 후배고, 그의 아내는 내 후배다. 지인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우연히 합석한 후 서로 마음이 맞아 자주 만났다. 관계가 어색해진 것은 그가 나를 좋아하면서부터였다. 선배의 아내를 연모하는 후배,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가 나에 대한 마음을 통제하지 못하는 바람에 그의 아내와 내 남편을 불쾌하게 했다.
물론 그와 나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어느 날 과음한 그가 술잔의 술을 흘리듯 나에 대한 마음을 흘렸을 뿐이다. 나를 좋아한다고. “저도 좋아해요”라고 농담조로 대꾸하며 어색해진 자리를 수습하려고 했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못했다. “ΟΟ 씨를 사랑한다고요. 왜 제 마음을 몰라주시는 거예요. 저 정말 슬퍼요”라며 이번에는 내 이름까지 넣어가며 속내를 드러냈다. 아무리 술기운이라 해도 취중진담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그가 늘어놓는 고백 아닌 고백에 남편은 나를 흘기며 마뜩잖은 눈길을 보냈고, 그의 아내는 나와 그를 번갈아 보며 붉으락푸르락 얼굴을 붉혔다.
나중에 들었는데 당시 그의 아내에게 따로 만나는 남자가 있었다고 한다. 아내의 외도로 인해 괴롭고 외롭던 그가 시나브로 내게 끌린 것이리라. 그걸 빌미로 그의 아내가 상황을 제대로 이용했다. 그 일을 꼬투리 삼아 적반하장으로 자기 연애를 합리화하며 냉큼 이혼을 요구한 것이다. 가눌 수 없이 무너진 그는 아내가 하자는 대로 했고, 그렇게 혼자가 된 그를 우리 부부는 보듬을 수밖에 없어 셋이 만남을 이어갔던 것이다.
이후 우리 부부와 그, 이렇게 세 사람이 만나는 동안 전과 같은 민망한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깍듯했고 과묵했다. 남편은 별다른 내색 없이 선배로서 혼자 된 후배를 묵묵히 챙겼고, 나는 나대로 어떤 틈도 보이지 않고 남편 옆에서 깔끔히 처신했다. 남편이 원하지 않았다면 그 만남은 진즉 깨졌을 테지만, 그렇게 갑자기 훌쩍 떠날 예감이 있었던 걸까. 결과적으로 나를 그의 곁에 둔 것이다.
게다가 그 무렵 남편이 하던 일이 잘되지 않았던 것도 그를 떨쳐내지 못한 현실적 이유였을 거라 짐작한다. 남편은 자그마한 개인 사업을 하고 있었고, 워낙 성실한 사람이라 빠듯하나마 자력으로 꾸려가고 있으려니 했다. 그에게 빌린 자금이 윤활유가 되고 있었던 것을 나만 몰랐다. 물론 그가 돈으로 남편을 조종하거나 심리적 압박을 가할 사람은 아니었지만 남편의 입장은 또 달랐을 것이다. 자기 아내를 마음에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다시는 얼씬도 못 하게 단속하지 못했던 것은 그래서였을까. 나는 내심 불쾌했다. 남편이 나보다 사업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를 좋아하는 그의 마음을 이용해 나를 볼모로 모종의 거래를 한 것 같아 원망 어린 마음이 배어 나왔다.
어쩌면 그가 희생을 하고 있었을지도. 나에 대한 호감 하나로 본인 또한 그리 넉넉지 않은 형편임에도 선배에게 돈을 빌려줘야 했으니. 그게 사실이라면 그렇게라도 해서 내 언저리에 있고 싶었을 그가 안쓰럽기도 했다. 남편이 ‘시퍼렇게’ 살아 있고, 더구나 속속들이 사정을 아는 상황에서 내가 그에게 뭘 해줄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우리는 한 가족으로 지냈다. 그는 정서적으로, 우리는 그에게 재정적 도움을 받으며.
그랬는데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에게 나를 돌봐달라는 부탁까지 남긴 채. 처음엔 네 사람이 세 사람으로, 세 사람이 두 사람으로 만남을 달리하는 동안 마음 또한 상황 따라 변했을 것이다. 한 가지 공통점은 멤버가 하나둘 떠나도 만남은 이어져왔다는 것이니, 이제 우리 두 사람은 언제까지 이 만남을 이어가게 될까. 그리하여 그와 나 둘 중 하나가 하늘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함께하게 될까. 그는 여전히 내 마음 문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문고리가 안으로만 있어서 자신은 감히 당겨볼 엄두도 내지 못하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