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에 분포돼 있는 홍단풍은 단풍나무과의 낙엽활엽 교목입니다. 처음엔 가지가 녹색이었다가 차츰 회색이 됩니다. 새로 난 잎은 붉은색인데, 자라면서 다른 나무들처럼 녹색으로 바뀌었다가 가을이면 문자 그대로 빨간 단풍으로 새로 태어납니다.
유치환의 시 ‘춘신(春信)’에 ‘꽃등인 양 창 앞에 한 그루 피어 오른 살구꽃 연분홍 그늘가지’라는 표현이 있지만, 홍단풍은 나무등, 나무불이라고나 해야 할 만큼 그 빨강이 깊고 강렬합니다. 올해에도 홍단풍은 온 산을 물들이고 있습니다.
단풍의 楓이라는 글자는 나무[木]와 바람[風]으로 돼 있습니다. 나무에 가을바람이 스며들면 잎 색깔이 달라집니다. 빨간색, 노란색, 갈색으로 변하는 현상은 이제 나뭇잎이 더 이상 활동을 하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잎이 활동을 멈추면 엽록소가 파괴되고 자가분해가 진행된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안토시안이 생성되는 종은 붉은색 또는 갈색 계열의 단풍이 들고, 그렇지 않은 종은 노란 단풍이 듭니다. 노란색 색소는 원래 잎 속에 있었으나 그동안 엽록소의 녹색에 가려 보이지 않던 본색(本色)이라고 합니다.
올해 단풍은 9월 27일 설악산을 떠나 하루 20~25km씩 남하해왔습니다. 여름철 가뭄이 심해 첫 단풍은 예년보다 1주일가량 빨랐고, 색깔도 어느 해보다 더 선명합니다.
단풍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역시 홍엽(紅葉)입니다. 만산홍엽(滿山紅葉)이라는 말은 괜히 생긴 게 아닙니다. 가장 널리 인용되는 단풍 시는 중국 당(唐)의 시인 두목(杜牧)의 작품입니다. “멀리 가을 산 위로 돌길이 비껴 있고/ 흰 구름 이는 곳에 인가가 보이네/ 단풍든 숲의 저녁경치가 좋아 수레를 멈췄더니/서리 맞은 잎이 봄꽃보다 더 붉구나.”[遠上寒山石徑斜 白雲生處有人家 停車坐愛楓林晩 霜葉紅於二月花] 붉은 단풍을 노래한 마지막 행이 천하의 명구로 꼽히고 있습니다.
왕희지(王羲之)의 7남이며 아버지처럼 서예로 유명했던 왕헌지(王獻之)는 회계산(會稽山) 북쪽의 산음(山陰)을 여행하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산음의 길을 가노라면 산과 강이 서로 마주치면서 어우러져 하나하나 볼 틈이 없다. 특히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때에는 마음속의 정회를 표현하기 어렵다.” [從山陰道上行 山川自相映發 使人應接不暇 若秋冬之際 尤難爲懷] 이 말에서 응접불가(應接不暇)라는 성어가 생겼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응접불가인 단풍의 명소는 요즘 가을 정취를 즐기는 행락객들로 붐비고 있습니다. 갈수록 가을이 짧아져 단풍은 더 황홀하고 소중한 선물처럼 보입니다.
인간에게도 ‘꽃의 나이’가 있고 ‘단풍의 나이’가 있습니다. 인간도 식물처럼 잎이 나고 꽃이 피어 푸른색으로 활발하게 광합성 작용을 하다가 계절의 변화에 의해 단풍이 들기 시작합니다. 어떤 색깔의 단풍이 되느냐는 그 자신의 기질과 천성, 서식하고 활동해온 곳의 기후 환경 등 외부 여건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람은 동물이지만 실은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식물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하늘 향해 팔 벌리고 서 있는 나무는 사람의 모습을 닮았다고 말하기도 하고, ‘인간은 나무’라는 생각을 펼친 문학작품도 많습니다.
201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생각하는 나무’(한광일)를 읽어봅니다. “나뭇잎은 어쩌면/나무들의/생각인지도 몰라//봄/뾰족뾰족/돋는 생각//여름/푸릇푸릇/펼쳐낸 생각//가을/알록달록/재미난 생각//‘이게 아닌데’/‘이게 아닌데’//온갖 생각/다 떨쳐버리고/다시 생각에 잠기는/겨울”
단풍을 생각하는 것은 인간을 생각하는 일입니다. 단풍이 든 인간은 아름다운가, 아름답다면 어떻게 아름다운가, 나무가 단풍 든 잎을 드디어 다 떨구고 겨울을 준비하듯이 사람도 그렇게 겨울을 준비하고 있는 것인가,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붉다가 푸르다가 다시 붉어지는 홍단풍의 본색은 어떤 것일까. 사람의 얼굴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언제 모습이 고유한 나인가, 어떤 게 나의 진면목인가, 남들이 나를 어떤 얼굴로 기억할까. 에이브러햄 링컨의 얼굴은 여러 가지이지만 사람들은 수염을 기른 얼굴만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의 대푯값입니다.
이런 조어가 가능하다면 초단풍(初丹楓), 만단풍(晩丹楓)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잎이 날 때의 모습과 단풍이 들었을 때의 모습이 다르듯 인간도 초단풍과 만단풍 시절의 모습이 같지 않습니다. 풍모는 물론 풍격도 달라집니다. 젊어서 무슨 일을 했든 사람을 평가하려면 다만 그 말년을 보라고 했습니다. 만단풍이 아름답고 멋져야 합니다.
최근 조선 선비들의 풍류와 우정을 알게 해주는 글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정조~순조 연간의 김조순(1765~1832) 서영보(1759~1816) 이만수(1752~1820)는 당대 최고의 지성이었고, 아주 친한 벗들이었습니다.
1806년 10월 중순(양력), 금강산 유람을 떠난 서영보가 서울에 있는 김조순과 함흥에 관찰사로 가 있는 이만수에게 금강산 단풍을 시와 함께 보냈습니다. 편지에는 “금강산 1만 2천 봉우리가 모두 이 단풍잎으로 덮여 있음을 멀리서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썼습니다.
단풍을 받은 이만수는 마침 짓고 있던 건물에 홍엽루(紅葉樓)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벗이 보내온 단풍잎과 편지를 ‘홍엽첩(紅葉帖)’이라는 시집으로 엮어 서영보는 물론 김조순에게도 보냈습니다. 이만수는 당대 최고의 고문가(古文家)로 명성이 높던 홍석주(1774~1842)에게도 글을 부탁해 홍엽첩에 얹었습니다. 김조순은 이와 별도로 화가를 시켜 그 단풍을 그리게 하고 글을 붙여 ‘홍엽전조첩(紅葉傳照帖)’을 만들었습니다.
그로부터 18년 뒤인 1824년, 단풍으로 물든 묘향산을 여행하던 김조순은 단풍가지 하나를 꺾다가 이미 세상을 떠난 두 사람을 생각하며 눈물짓는 시를 썼습니다. 시에 붙인 주석에 서영보가 금강산 단풍을 보내온 일이 기록돼 있습니다. 그 단풍잎을 연적의 갑 안에 넣어두었더니 지금까지 손상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무려 18년입니다!
단풍은 선비들에게 무엇이었을까? 시서화로 유명한 표암 강세황 등 많은 사람의 집이나 누각에 홍엽루, 홍엽정 등의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단풍을 보면서 200여 년 전에 단풍을 주고받았던 사람들의 마음을 더듬어봅니다. 삶의 성숙과 아름다운 우정, 소통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말하지 않아도 벗끼리 서로 통하는 것을 신교(神交), 그런 만남을 신회(神會)라고 한다는데, 홍석주는 ‘단풍의 우정’을 “천고의 풍류요 운치 있는 일”이라고 홍엽첩에 썼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단풍은 떨어져 장차 사라지지만 그 정화(精華)만은 남아 바람과 서리가 매섭게 쳐도 그 색은 더욱 선명하게 됩니다. 군자의 만절(晩節)이 이와 같은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