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초월한 색채의 시인 마르크 샤갈 특별전

입력 2025-09-07 07:00

[미술관 탐방]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미공개 유화 7점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

김춘수 시인의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첫 구절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이 문장은 현실이 된다. 눈이 내리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와 함께 화려하고 환상적인 색채, 동물과 사람, 마을 풍경이 동화처럼 어우러진 샤갈의 세계가 펼쳐진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시적인 화가, 마르크 샤갈(1887~1985)은 거의 한 세기를 살았다. 그는 러시아(현 벨라루스)에서 태어난 유대인 화가로,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파리, 베를린, 뉴욕 등 세계 여러 도시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평생 고향에 뿌리내리지 못했지만, 샤갈은 고향 마을과 하늘을 나는 인물, 동물, 종교적 소재를 자신만의 색채 언어로 풀어내며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그가 평생 남긴 작품은 1만여 점에 달한다.

샤갈은 입체파, 야수파 등 특정 사조에 자신을 가두길 거부했다. 대신 그는 고향에 대한 향수, 사랑하는 이에 대한 애정, 동물과의 교감 등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을 환상적인 색채로 표현했다. 그에게 색과 빛은 단순히 보이는 것을 그리는 도구가 아니라, 감정을 전하고 잊힌 기억을 불러내는 언어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미공개 유화 7점을 포함해 기억, 주요 의뢰 작품(라퐁텐 우화), 파리, 영성, 색채, 지중해, 기법, 꽃 등 8가지 주제에 따라 17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장 일부에는 파리 오페라 극장 천장화와 예루살렘 하다사 의료센터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미디어아트로 재해석한 몰입형 공간을 구현했다. 각 공간마다 색다른 예술적 경험을 느낄 수 있다.

샤갈의 작품은 미술사를 잘 몰라도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을 담고 있다. 반유대주의와 두 차례 전쟁이라는 격동의 시대를 거치면서도 사랑과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의 메시지가 오늘날 보는 이에게 따뜻한 위로로 오래도록 전해지길 바란다.


덤불 속의 광대

샤갈은 어린 시절부터 서커스를 좋아했다고 한다. 광대는 웃음을 주는 존재지만, 그 웃음 뒤에는 슬픔과 고단한 삶이 숨어 있다. 그는 서커스를 인생의 축소판이자 희로애락의 상징으로 보았다.

‘덤불 속의 광대’, 1975, Oil on Canvas. ⓒChagallⓇ, by SIAE 2025.


파리 위의 신부

샤갈이 91세에 그렸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만큼 세심한 표현력이 돋보인다. 하늘에 떠 있는 여성은 일찍 사별한 아내 벨라일 수도, 재혼한 바바일 수도 있다. 작품에서는 파리뿐 아니라 고향 마을, 사람들과 동물들이 어우러져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곳에 겹쳐놓은 듯하다.

‘파리 위의 신부’, 1977, Oil on Canvas, 130×96cm.


전 세계 최초 공개되는 ‘일요일’ 스케치

파리의 일요일 풍경에서 받은 느낌을 표현했다. 샤갈은 색채에 생명을 부여해 시간과 감정을 동시에 끌어내는 방식을 시도했다. 파리를 상징하는 에펠탑과 노트르담 사원, 그 속의 연인 등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일요일’ 스케치, 1953, Oil on Plywood, 32.74×24cm.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 음악이 머문 천장(몰입형 미디어아트)

1964년 샤갈은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의 천장화 작업을 맡았다. 당시에는 러시아 출신 유대인 화가의 작업에 비판적인 시선도 있었지만, 현재는 공연이 없어도 샤갈의 천장화를 보러 사람들이 찾아올 만큼 사랑받는다. 천장화 세부를 자세히 볼 수 있는 모니터가 설치돼 모차르트, 베토벤 등이 작곡한 14개의 오페라 장면을 볼 수 있다.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천장화 재현.


예루살렘 하다사 의료센터의 스테인드글라스

1959년부터 1961년 샤갈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주제로 열두 점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 성경 속 각 지파에 내린 축복을 자신만의 색채 언어로 그려냈다. 전시장에서는 유리와 빛이 만들어내는 색채 변화를 실시으로 경험할 수 있다.

*열두 지파 이스라엘 민족의 시작이자,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처음 섬긴 야곱의 열두 아들.

하다사 의료센터 스테인드글라스 재현.


전시 정보

기간 2025년 9월 21일(일)까지 시간 10:00~19:00(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

관람 요금 1만 2500~2만 5000원(만 65세 이상 현장 매표소 특별 할인 50%)

도슨트 온느뮤지엄, 트래블레이블(유료), 박보검의 오디오 가이드(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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