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형의 한문산책] 꽃 꺾어 산 놓고 무진무진 먹새그려

기사입력 2016-07-01 08:53 기사수정 2016-07-01 08:53

우리의 조상들은 술을 마실 때, 몇 잔을 마셨는지 꽃가지를 꺾어 세어 가며 마셨던 것 같다. 예컨대 조선 초기 문인인 정극인의 ‘상춘곡(賞春曲)’에 “갓 괴어 익은 술을 갈건(葛巾)으로 걸러 놓고, 꽃나무 가지 꺾어 수놓고 먹으리라. 화풍(和風)이 건듯 불어 녹수(綠水)를 건너오니, 청향(淸香)은 잔에 지고, 낙홍(落紅)은 옷에 진다”는 표현이 나온다.

술에 관한 한 조선시대 송강(松江) 정철(鄭澈)을 빼 놓을 수 없다. 그는 ‘장진주사(將進酒辭)’에서 “한 잔(盞) 먹새그려, 또 한 잔(盞) 먹새그려. 꽃 꺾어 산(算) 놓고, 무진무진(無盡無盡) 먹새그려”라고 읊고 있다. 여기서도 꽃을 꺾어 잔을 세는 표현이 나오고 있다. 아마도 지나치게 많은 술을 마시는 것을 경계함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면 중국의 음주문화는 어떠했는가? 술에 관한 한 당(唐)나라 때 이백(李白)을 빼고 논할 수가 없다. 그는 그의 유명한 ‘장진주(將進酒)’에서 ‘회수일음삼백배(會須一飮三百杯)’, 즉 ‘마셨다 하면 모름지기 300잔은 마셔야 하지!’라고 호기를 부리는 한편,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서는 ‘시를 만일 짓지 못하면 술을 세 말[三斗] 마시는 벌을 내리겠다(如詩不成 罰依金谷酒數)’고 하고 있다. 이쯤 되면 술잔을 세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였을 것 같다. 이러하니 이백도

鍾鼎玉帛不足貴

권력이니 부귀가 귀한 것이 아니니

但願長醉不願醒

다만 원하는 것은 마냥 취해 깨고 싶지 않을 뿐

古來聖賢皆寂寞

고래로 성현이란 사람들도 모두 죽고 나면 조용할 따름

惟有飮者留其名

오직 술 마신 자만이 이름을 남겼도다!

라고 호기롭게 외치고 있다. 이런 이백 식의 호기로운 권주가가 있는 반면, 아주 내성적인 권주가도 있다. 남북조시대 도연명(陶淵明)은 역사상 누구 못지않게 술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는 ‘음주(飮酒)’란 제목의 시를 20수 남겼는데, 그 대부분의 내용이 매우 소박하게 술을 즐기는 내용이다. 예컨대, 제1수는

忽與一觴酒

홀연히 한 잔 술과 더불어 살아가니,

日夕歡相持

조석으로 즐겨하며 서로를 지키리라.

라고 노래하고 있으며, 제7수에서는

一觴雖獨進

한 잔 술을 비록 혼자 마시지만

杯盡壺自傾

잔이 비면 술병이 스스로 기울여 잔을 따른다.

라고 술병과 대작(對酌)하여 술을 마시는 광경을 그리고 있다. 수많은 중국문학 작품 중 독작(獨酌)을 이처럼 술병을 의인화하여 대작하는 광경으로 그리는 것은 이 작품이 유일하다. 제8수에서는

提壺掛寒柯

술병 들어 찬 겨울나무 가지에다 걸어두고 나서,

遠望時復爲

멀리서 쳐다보고, 때로 또 바라본다.

라고 노래하고 있다. 아마도 시인은 겨울이 되어 술이 다 떨어졌으리라. 그리운 술병을 창문 밖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보고 또 바라본다... 그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도연명전’에는 그의 소박했던 일면이 다음과 같이 그려지고 있다.

‘그는 귀하건 천하건 찾아오는 이에게는 술이 있으면 바로 술상을 차려내었고, 먼저 취하게 되면 손님에게 말하길, “내가 취하여 잠이 들려 하면 그대는 돌아가십시오”라고 하니 그의 진솔함이 이와 같았다. 군(郡)의 장교(將校)가 방문한 적이 있는데, 마침 술이 익어 머리 위의 갈건을 가지고 술을 거르고는[葛巾漉酒] 거른 후에 다시 착용하였다.’

이 글의 앞부분으로 돌아가서, 정극인의 상춘곡에 나오는 ‘갓 괴어 익은 술을 갈건으로 걸러놓고’란 구절이 이 글에서 비롯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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