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이름을 중시하는 경명(敬名) 사상이 있었다. 따라서 이름은 군사부(君師父)가 아니면 함부로 부를 수 없었다. 이에 따르는 호칭상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웃어른들이 자(字)를 지어주었는데 이렇게 지어진 ‘자’도 친구 등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부를 수 없었으므로, 누구나 편하게 부를 수 있는 호칭이 별도로 필요해 만들어진 것이 호(號)다. 호는 자신이 직접 짓는 자호(自號)가 있고, 친구나 스승이 만들어주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당호(堂號)라 하여 선비들이 사는 집의 호칭, 나아가서 그 집에 살고 있는 주인의 호칭으로 사용한 것도 많다. 먼저 자호의 예로, 우리나라가 배출한 대시인인 미당(未堂) 서정주 선생을 들 수 있다. <논어(論語)> ‘선진편(先進篇)’을 보면 다음과 같은 얘기가 나온다.
공자께서 지나가시는데, 제자인 자로(子路)가 거문고[瑟]를 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음악이 군대에서 사용하던 음악으로 북쪽 변방의 살벌한 음색이 있어, 기질이 강맹하였다. 못마땅하게 여긴 공자님께서는 ‘어찌 내 집에서 그런 음악을 연주하는가?’ 하고 나무랐다. 그러자, 그다음부터 다른 제자들이 자로에게 불경스럽게 대하기 시작했고, 이에 공자님께서는 다른 제자들을 타일러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한다.
“자로는 이미 그 경지가 마루에 올라 있다. 다만, 아직 방 안까지 들어오지는 못했을 따름이다(由也 升堂矣. 未入於室也).”
이후, 학문이건 예술이건 어떤 경지를 얘기할 때는, 승당(升堂)과 입실(入室)이란 단어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서정주 선생께서는, 시에 관한 한 자신의 경지는 ‘아직 승당(升堂)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겸손의 의미로 ‘미당(未堂)’이란 단어를 자호로 삼은 것이다.
그다음에는, 당호의 예로 다산(茶山) 정약용의 ‘여유당(與猶堂)’을 들 수 있다. 다산은 자신의 천주교 경력 때문에 많은 박해를 받고 마침내 벼슬을 내어놓고 물러나게 되었다. 잘못하면 또 다른 화를 당할 수도 있는 처지라, 자신의 당호를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15장에 나오는 “망설이기를[與兮] 겨울에 살얼음판 건너듯 조심하고, 겁내기를[猶兮] 사방 이웃을 두려워하듯 신중히 하라(여(與)는 코끼리, 유(猶)는 원숭이를 뜻함)”는 내용의 의미를 따서 ‘여유당(與猶堂)’이라 짓고, 조심 또 조심하자는 경구(警句)로 사용했다.
마지막으로, 스승이 지어준 호의 예로 우리가 잘 아는 추사(秋史)를 들 수 있다. 추사의 스승은 북학파(北學派)로 유명한 정유(貞蕤) 박제가(朴齊家)다. 박제가는 연경에 갔을 때 담계(覃溪) 옹방강(翁方綱)의 집에서 강덕량(江德量)이라는 사람을 만난다. 강덕량은 옹방강에게 화도사 사리탑 글씨 탁본의 진본을 준, 유명한 금석학의 대가이자 예서(隸書)에 능한 서예가였다. 그런데 강덕량의 호가 ‘추사(秋史)’였다. 박제가와 강덕량은 서로 마음이 통해 친하게 지냈으며, 박제가는 강덕량이 보여주는 금석 속의 옛 글씨들에 깊이 매료되었다. 연경에서 돌아온 박제가는 16세 소년인 김정희에게 입이 닳도록 강덕량 이야기를 한 뒤, 그를 본받으라는 의미로 ‘추사(秋史)’라는 호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추사 김정희가 금석학(金石學)과 서예, 특히 그중에서도 예서에 힘쓴 것은 바로 이러한 강추사(江秋史)의 영향인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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