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지막을 제야(除夜) 제석(除夕) 또는 제일(除日)이라고 한다. 흔히 제야라 하면 한 해의 마지막이 없어지니 ‘없앨 제(除)’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이때의 제(除)는 ‘바뀐다[易]’는 의미이다.
강희자전에 의하면 “이때 사용되는 ‘제(除)’는 바뀐다는 의미로, 새해와 묵은해가 서로 바뀌므로 세제(歲除)라 표현하며, 흔히 제석으로도 쓴다[易也 新舊歲之交謂之歲除 俗云除夕]”고 풀이하고 있다. 이러한 한 해의 마지막 날에는 예로부터 밤을 지새우는 풍습, 즉 수야(守夜)가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문제가 약 400년 전인 광해군 8년(1616)에 치러진 과거시험인 증광회시(增廣會試)에 출제된 적이 있다. 당시 장원급제한 이명한(李明漢)의 답을 살펴보면, ‘섣달 그믐밤을 새우는 것은(중략) 묵은해의 남은 빛이 아쉬워서 아침까지 앉아 있는 것이고, 날이 밝아오면 더 늙는 것이 슬퍼 술에 취해 근심을 잊으려는 것입니다....유독 섣달 그믐날에 서글픔을 느끼는 것은, 하룻밤 사이에 묵은해와 새해가 바뀌니, 사람들이 나이 먹는 것을 날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해로 따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날이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사실 그 해가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이고, 그 해가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실은 늙음을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하고 있다.
두보(杜甫)의 ‘금석행(今夕行: 오늘 저녁의 노래)’에는 ‘今夕何夕歲云徂(금석하석세운조): 오늘 저녁은 어떤 저녁인가, 한 해가 가는 날이네.’라고 돼 있고, 당(唐)나라 때 고적(高適)의 <제야작(除夜作: 섣달 그믐날 밤에)>은 ‘故鄕今夜思千里(고향금야사천리): 이 밤 고향 생각하니 천리 길인데 霜鬢明朝又一年(상빈명조우일년): 서리 내린 귀밑머리 내일 아침이면 또 한 살 느는구나.’라고 노래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세모(歲暮)를 노래한 최고의 시는 남북조시대 사령운(謝靈運)의 ‘세모’이다.
殷憂不能寐(은우불능매) 깊은 걱정에 잠 못 이루니
苦此夜難頹(고차야난퇴) 밤이 더디게 지나감이 괴롭구나.
明月照積雪(명월조적설) 밝은 달은 쌓인 눈을 비추어 (청백색으로 빛나고),
朔風勁且哀(삭풍경차애)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소리 슬프게 들리누나.
運往無淹物(운왕무엄물) 사계절의 운행은 머물러 있지 않으니
年逝覺已催(연서각기최) 일년이 또 지나가매, 내 수명도 쫓김을 깨닫노라.
이 시의 명구로 꼽히는 ‘명월조적설(明月照積雪)’은 그의 대표작 ‘등지상루(登池上樓)’의 ‘지당생춘초(池塘生春草)’ 구와 더불어 각각 ‘명월(明月)’구 ‘지당(池塘)’구로 불리며 고금의 시들 중 승어(勝語)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이 구절의 어디가 그렇게 뛰어났을까? 남북조시대 양(梁)나라 사람으로서 시의 비평가로 유명한 종영(鍾嶸)은 ‘시품서(詩品序)’에서 “명월조적설의 뛰어난 점은 쓸데없는 가식으로 치장하기보다 ‘직심(直尋)’, 즉 느끼는 감정을 직접 전달한 데 있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