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詩歌) 문학은 <시경(詩經)>이다. <시경>의 시들 중 가장 오래된 것들은 서주(西周) 초기인 BC 10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지금으로부터 따지자면 약 3000년 전의 시가이다. 당시 나라별로 유행하던 민요를 모아놓은 것인데, 이후 가락은 없어지고 가사만 남아 시의 형태로 전해오던 것을 공자(孔子)가 305편으로 편찬한 것이다. 이들 중 소남(召南: 낙양) 지방에서 불리던 <초충(草蟲)>이라는 시를 살펴보자.
喓喓草蟲(요요초충) 찍찍 우는 풀벌레며
趯趯阜螽(척척부종) 뛰고 뛰는 메뚜기로다.
未見君子(미견군재) 그이를 보지 못하니
憂心忡忡(우심충충) 근심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지누나.
亦旣見止(역기견지) 지금이라도 만나서
亦旣覯止(역기구지) 지금이라도 자리를 같이하면
我心則降(아심즉항) 내 마음이 가라앉을 텐데...
고대 중국사회는 남자의 노동력에 의존한 경제구조였다. 따라서 남자들은 집에서는 농사를 짓다가도, 국가적 대공사 등의 부역(賦役)에 동원되거나 전쟁에 징병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고대의 시가 문학은 여인이 부역에 끌려간 남편을 그리는 내용이 많은데, 이 시는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시 중 하나이다. 이 시의 주체인 여인은 가을 수확철 들판에서 고된 농사일을 하다가, 뛰어노는 메뚜기를 바라보며 생사를 알 길 없는 남편을 떠올린다.
이 시에 이채로운 단어가 등장하는데, 그것은 바로 ‘구(覯)’란 단어이다. 이 단어는 <주역(周易)>의 <계사하(繫辭下)>에 ‘남녀가 정을 합하니, 만물이 생겨난다(男女覯精 萬物化生)’란 표현에 나오듯, ‘남녀 간의 결합’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지금이라도 만나서 자리를 같이한다면, 불안한 내 마음이 가라앉을 텐데…’라는 시구절은 진솔하기 그지없다.
이처럼 고대의 시가 문학들은 매우 진솔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부분이 적지 않았는데, 남녀 간의 상열지사(相悅之詞)는 근엄한 주자학적 전통 하에서는 각색이 되어 해석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이 시의 두 번째 장을 살펴보자.
陟彼南山(척피남산) 저 남산에 올라
言采其蕨(언채기궐) 고사리를 캐노라.
未見君子(미견군재) 그이를 보지 못하니
憂心惙惙(우심철철) 근심하는 마음이 간절하노라.
亦旣見止(역기견지) 지금이라도 만나서,
亦旣覯止(역기구지) 지금이라도 자리를 같이하면
我心則說(아심즉열) 내 마음이 기쁠 텐데...
이 시의 제 1장의 무대가 가을 들판이었다면, 제 2장의 무대는 해가 바뀌어 고사리를 캐는 봄철의 산이다. 산을 올라가니, 발돋움을 하고 목을 빼서 이따금씩 멀리 바라보기도 하지만, 해가 바뀌어도 바라는 그이는 돌아오지 않는다. 여인의 마음은 ‘忡忡(충충)’에서 ‘惙惙(철철)’로 더욱 간절해지고, 이에 따라 반가운 재회(再會)를 상상하는 마음도 ‘안도감[降]’에서 ‘기쁨[說]’으로 점증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여인 중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草蟲圖)’라는 유명한 그림이 있다. 신사임당의 그림 이후, 여인들이 수를 놓는 병풍 등에는 이처럼 ‘풀과 메뚜기, 나비’ 등 초충의 그림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러한 그림의 원류(源流)에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시 중 하나인 <초충>이 자리 잡고 있다. 이른바, 화중유시(畵中有詩: 그림 속에 시가 있음)라…
하태형(河泰亨)
뉴욕주립대(빙햄턴) 경제학박사
보아스 투자자문 대표이사
수원대 금융공학대
학원장 등 역임
현재 현대경제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