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을 대표하는 중국의 명문장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글이 바로 ‘적벽부’이다. 이 문장을 두고 역대로 수많은 사람이 칭송을 끊이지 않았다. 그중 가장 이 문장을 잘 논평한 글로 평가받는 글은 소동파 이후 약 200년 뒤의 사람인 송나라 사첩산(謝疊山)이 쓴 <적벽부평어(赤壁賦評語)>인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그 능려(凌)하고도 표일(飄逸)한 말들은 한마디라도 불 피워서 밥해 먹고 사는 사람의 말과 같지 않다. 이 문장을 읽노라면 사람들로 하여금 낭풍(風)을 타고 올라 바다를 건너 봉래산(蓬萊山)으로 가는 기상을 깨닫게 하여 참으로 조물주와 노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니, 절대로 붓을 잡아 글을 배워서는 이와 같은 문장을 지을 수는 없다.”
또한 북송시대 문장가인 당경(唐庚)은 그의 <당자서문록(唐子西文錄)>에서 이 글을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생각건대 전(前)적벽부와 후(後)적벽부, 이 두 편의 글은 일세만고(一洗萬古)의 명문장으로, 이 글 중 한 구절과 비슷한 것도 온 세상을 뒤져 구할 수가 없다[欲髣髴其一語 擧世不可得也]”
뒷날 송의 효종(孝宗)이 소동파의 문집 서문에서 그를 ‘문장지종(文章之宗)’으로 칭송하게 만들었으며 그를 대표하는 이 명문 중의 명문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가장 힘들었던 유배시절 지어졌다. 1080년 이른바 오대시안(烏臺詩案) 사건에 연루되어 겨우 목숨을 건진 그는 45세 되던 나이로 황주(黃州)에 유배된다.
평생 고생이라고는 해보지 않던 그가 먹을 게 없는 곤경에 처하자 마몽득(馬夢得)이란 친구가 땅 몇 고랑을 주면서 경작해 보라고 권한다. 46세 나이로 난생처음 땅을 경작하는 고초가 얼마나 컸겠는가? 그러나 그는 오히려 이때 자신이 경작하던 동쪽 언덕의 땅을 따서 자신의 호를 ‘동파(東坡)’라 짓고, 이 역경을 이겨내는 자신의 위대한 작품, <적벽부>를 짓기 시작한다.
흔히들 이 <적벽부>가 지어진 곳이 옛날 삼국시대의 대전인 ‘적벽대전’이 일어난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삼국지의 영웅인 오(吳)나라 주유(周瑜)가 위(魏)나라 80만 대군을 맞아 화공(火攻)으로 물리친 장소는 호북성(湖北省) 가어현(嘉魚縣) 북동 양자강(陽子江) 남안이다. 그러나 소동파가 <적벽부>를 지은 곳은 이와는 상관없는 호북성(湖北省) 황강현(黃崗縣) 성 바깥, 자신이 유배되어 있던 황주(黃州)에 있는 ‘적벽기(赤壁磯)’라는 조그만 붉은색 언덕이었다.
그 아래로 흐르는 개천은 작은 어선 하나 정도 가까스로 띄울 수 있는 정도의 작은 개천이었는데 그마저도 최근엔 인근 지역의 댐 공사로 수몰돼 사라지고 없어졌다. 이 궁벽한 시골의 작은 개천에 배를 띄우고는 그는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객이 말하길, ‘달은 밝고 별빛은 드문데, 까막까치 남쪽으로 날아간다(月明星稀 烏鵲南飛)’, 이는 조조(曹操)의 시가 아닌가요? 서쪽으로 하구(夏口)를 바라보고, 동쪽으로 무창(武昌)을 바라보니, 산천은 서로 엉겨, 울창하고 푸르니, 이곳은 바로 조조가 주유에게 곤욕을 치른 적벽 아니던지요? 바야흐로 형주를 격파하고, 강릉으로 내려와, 순풍을 타고 동으로 흘러가니, 늘어선 뱃전은 천리요, 깃발은 하늘을 가렸다지요.”
궁벽한 시골의 개천에서 삼국시대 위대한 전투를 상상하며 지은 <적벽부>, 이것은 어쩌면 당시 자신의 비극적인 삶에 대한 유일한 탈출구였던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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