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일명 ‘웰다잉법’에 따라 8월 4일부터 말기환자에 대한 호스피스가, 내년 2월부터는 임종기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해졌다. 우리 삶의 일부인 ‘죽음’에 대한 법률임에도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동안 ‘죽음’과 관련한 책을 출간하고 다양한 강연을 펼쳤던 서울아산병원 유은실(劉殷實·61) 교수는 이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녀는 최근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데이비드 케슬러의 <생이 끝나갈 때 준비해야 할 것들>을 우리말로 옮겼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 웰다잉법을 이르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올해 8월 4일부터는 말기 암환자에 한해 시행되던 호스피스 서비스가 후천성면역결핍증·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만성간경화 말기 환자에게도 확대됐다. 단어 하나하나에 대한 해석도 중요하겠지만, 유 교수는 그보다 앞서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는 개개인의 마음가짐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이 법률이 우리에게 왜 필요하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답을 자연스레 찾아가게 될 것이라고. 이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겠지만, 무엇보다 죽음을 가까이하는 의사와 환자를 곁에 둔 가족에게 더욱 중요한 이야기다.
“사실 의사들은 늘 죽음을 가까이하기 때문에 의식하려 하지 않거나 고민할 겨를이 없어요. 또 주변에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이를 돌보는 분들이 읽으면 좋겠더라고요. 막상 자신이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은 이런 책을 읽게 되지 않아요. 오히려 아직 건강한 중장년이나, 환자를 둔 가족이 읽으면 존엄한 죽음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죠.”
웰다잉법 시행, 죽음을 이야기해야 할 때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의미나 영적인 부분을 다루면서도 사전의료의향서 작성 등 우리가 준비해야 할 실질적 항목들을 소개한다. 유 교수는 일단 이러한 책을 사서 보는 것만으로도 죽음 준비의 첫 단추를 꿴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우리 여고 동창 중에는 의사가 꽤 많은 편이에요. 어느 날 그 친구들이 제가 어디서 강의하는 걸 들었는데, 다들 웬만큼 공부도 하고 알만 한데도 막상 자신들이 실천해온 게 없다고 털어놓더라고요. 그만큼 ‘죽음 준비’는 우리에게 낯설죠. 이제 웰다잉법이 시행되면서 여기저기서 강연도 열리고 관련 책도 쏟아져 나올 거예요. 그런 데 참여하고, 책 한 권이라도 찾는 분들은 이미 죽음 준비의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볼 수 있죠.”
<생이 끝나갈 때 준비해야 할 것들>은 유 교수의 번역을 통해 올해 국내에서 만났지만, 본래는 미국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권리>라는 제목으로 1997년 출간됐다. 그리고 10년 뒤 현재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왔고, 그로부터 10년 뒤 유 교수가 우리말로 옮기게 된 것이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전의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교훈은 무엇일까? 혹시나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닐지 묻자, 유 교수는 오히려 시점이 잘 맞는다고 답변했다.
“책은 오래됐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 의미 등은 변함없이 통해요. 다만, 미국과 우리나라의 법적, 제도적 환경이 다르죠. 그동안 우리는 죽음에 대해 공론화할 기회가 없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법이 만들어지고 시행되면서 상황이 바뀌었잖아요.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당시 미국의 모습이 현재 우리 형편에 실질적으로 들어맞는 부분이 있어요.”
유 교수는 무엇보다 법이 시행되면서 병원을 찾는 환자나 보호자가 똑똑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녀가 말하는 ‘똑똑함’이란 의료 행위나 질병 등에 대해 알고 싶은 부분을 의료진과 원활하게 소통하는 것을 뜻한다.
“완화의료는 무엇인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어떻게 쓰는지, 호스피스 기관에는 어느 단계에서 가는 것인지 등 궁금증이 많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 환자나 보호자들은 이런 문제를 주치의와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더라고요. 왠지 그런 말을 하면 의사가 안 좋아할 것 같다는 등의 이유로 뒤로 딴 사람을 통해 알아보죠. 그런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 큰 문제는, 그런 질문을 해도 속 시원히 대답해줄 수 있는 의사나 기관이 몇 안 된다는 거예요. 법 시행 전에 교육을 하고, 뒷받침하는 제도 등이 마련돼야 했는데 그게 이뤄지지 않아 보조를 못 맞추는 실정입니다. 참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죠.”
죽음의 질이 높아야 삶의 질이 높아진다
2010년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OECD 40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죽음의 질’ 평가에서 한국은 32위에 머물렀다. 쉽게 말해 죽음의 질이 낮은 편. 그렇다면 죽음의 질이란 무엇일까?
“간단한 예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가 평생 쓸 의료비의 절반을 죽기 전 1년 사이에 쓰고, 그것의 절반 이상을 떠나기 석 달 안에 쓰고 간다고 해요. 대부분의 환자가 치료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죠. 이제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시점부터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의 과정에서 삶의 질을 죽음의 질이라 말합니다. 그러니, 그때의 삶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죽음의 질이 좌우된다고 볼 수 있어요. 죽음의 질이 높은 나라의 경우를 보면 무의미한 치료보다는 스스로 주변을 정리하면서 더 의미 있게 보내는 편이죠.”
환자가 죽음을 앞두었을 때, 이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는 보호자들이 있다. 혹시 이런 행동이 환자의 죽음의 질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 우려스러웠다.
“물론 당장 이야기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의사들도 자기 가족이 그런 상황에 처하면 쉽게 입을 떼지 못하니까요. 그러나 미루지 말고 단계적으로 본인과 신뢰하는 가족, 심지어는 문제가 될 만한 가족과도 사실을 공유해야 합니다. 당사자가 자기 죽음에 대해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존엄한 죽음이 가능해져요. 자기결정권을 행사해서 순간순간 선택해야 할 일이 많은데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모든 게 엉켜버리고 말죠. 그러면 한 사람의 죽음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요.”
맞이하는 죽음을 위해 실천할 것들
유 교수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타인이 아닌 환자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전에 가족과 죽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유언장 등을 미리 써두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녀 역시 이러한 준비를 모두 끝내놓은 상태다. 이밖에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런 서류를 당장 어디에 제출하지 않더라도 한번 쓰려고 시도해보면 생각이 많이 달라질 거예요. 저도 죽음학회에서 나온 유언장 샘플을 채우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이게 하루아침에 쓸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깊은 고민과 성찰을 필요로 하죠. 그러니 꼭 죽음이 다가왔을 때보다는 해마다 연말연시나 생일 등 특정일을 정해서 써보면 어떨까 해요. 혹시 병을 앓고 있다면 막연히 치료를 받기보다는, 내가 왜 아프고 무슨 치료를 받고 어떤 약을 먹는지 한번 정리해볼 필요가 있어요. 또 시간을 내서 호스피스기관에서 봉사활동을 해볼 것을 권해요. 그렇게 간접적으로 죽음을 경험하다 보면 나에게 맞는 실천 사항들이 하나둘씩 생겨날 겁니다.”